(17)삼승면 선곡리 뻠뿌샘
(17)삼승면 선곡리 뻠뿌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7.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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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의 대상이던 펌프 샘이 정원의 조형물로 전락

아마도 4, 50대 이상 되신 분들은 농촌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어디서 살았던지 대부분 잊지 못하는 하나의 큰 추억이 있다. 요즘처럼 날씨가 35도를 넘나드는 삼복더위에 땀이 줄줄 흐르는 상의를 벗고 펌프 샘 아래 엎드려 형제들에게 펌프질을 시키고는 채 1분도 안되어'그만'소리를 연발하면서 추워서 온몸을 덜덜 떨던 추억이다. 이런 추억을 만들어 준 펌프 샘은 너무도 짧은 기간에 수백 년 이어져온 전국의 공동우물과 마을 빨래터를 삽시간에 무너트리고 갑자기 사라져버린 우리의 생활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번 주'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 펌프 샘을 주제로 하고 삼승면 선곡리(선우실) 최재한 고가를 찾았다.
선우실은 신선들이 놀던 골짜기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문으로 표기하면 선곡(仙谷)이다. 화순 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던 선우실의 최재한 고가는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44호(2004-09-17)로 지정되었으며, 일재 어윤중(一齋 魚允中, 1848-1896)의 생가로 알려지고 있어 어판서(참판)댁이라고도 한다. 이 고가의 안채 마당 우측 두레박 샘 위에 펌프 샘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 주인인 최재한(73)님은'선우실은 동네 지형이 배의 형태를 하고 있어 옛날부터 샘을 파면 안 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부엌에 단지를 묻어 두고 인근 계곡물을 길어 식수로 사용했는데, 약60년 전 동네가 너도나도 샘을 파기 시작할 때 옛날의 우물터를 찾아 두레박 샘을 만들었으나 물이 여의치 않아, 1966년도에 펌프 샘을 박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귀한 생활문화유산이라는 생각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이 펌프 샘은 같이 태어난 동료들이 모두 용광로로 들어가 소멸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1960년대 일본에서 만든 모델을 우리나라에서 복제하여 전국에 공급한 펌프 샘은 압력작용을 이용해 지하의 물을 끌어 올리는 샘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였다.
양지바른 마당 귀퉁이나 뒤뜰 장독대 옆에 직경 약6cm의 파이프를 9자(2.7m)에서 20자 정도 박고, 위에 무쇠로 만든 몸체를 연결한 후 마중물을 한바가지 넣고, 지렛대를 아래위로 저으면 처음에는 노인네 숨 넘어 가는 소리로 '허-억 허-억'하다가 금 새 시원한 물을 콸콸 뿜어내는 펌프 샘 물 줄기에 구경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물이 필요할 때 마다 집안에서 편안하게 물을 퍼서 식수로 사용하고, 빨래를 하는 부잣집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동네 어린 꼬마들은 갖은 저자세로 한번만 펌프질을 하게 해달라고 부잣집 아이에게 매달리고는 하였다. 이 펌프 샘은 들어오자마자 물동이에 물을 이고 오거나, 물지게를 지는 일에 지친 전국 어머니들의 소원 제1호가 되어 짧은 기간 내에 집집마다 설치되었으나, 반대급부로 어머니들의 소통의 장소요, 한을 풀어내던 또 하나의 어머니들의 세상이었던 공동 우물과 마을 빨래터를 삽시간에 잃어 버렸다.
그런 펌프 샘이 어느 날 도시에는 수돗물이, 농촌에는 간이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고철장수의 리어카로 자리를 옮겨 짧은 생을 마감하였고, 이제는 골동품가게나 전원주택의 조형물에서나 간혹 볼 수 있는 생활문화유산이 되었다. 일부 전원주택에서라도 오래 보존하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압력작용을 이용해 마중물을 넣어 펌프질을 해 지하의 물을 끌어 올리는 샘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나오는 펌프샘의 모습이다.
압력작용을 이용해 마중물을 넣어 펌프질을 해 지하의 물을 끌어 올리는 샘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나오는 펌프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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