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분모
공통분모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7.01 10:02
  • 호수 5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의 첫째 주인은 당연히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학교의 과정이자 목적입니다. 여전히 부족함이 많으나 옛날에 비해서는 아이들이 원래 누려야 할 것들이 그들에게 좀 더 주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라떼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중앙현관이 선생님이나 귀빈의 몫이었죠.
둘째 주인은 교직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수업과 생활을 함께하는 사람, 관리의 역할을 하는 사람, 행정의 역할을 하는 사람, 요리를 하는 사람,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 청소를 하는 사람, 외부인의 출입을 관리하는 사람, 운전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각의 영역이 판이하게 다릅니다만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반드시 공통분모로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주인인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끼고 귀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것을요. 만약 이런 의식이 없다면 학교 내부에 커다란 적을 품고 있는 셈입니다.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빈도는 사고의 중심에 아이들이 얼마만큼 자리 잡고 있는지에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두고 뭉치는 곳일수록 화목할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예산을 꽤 많이 쓰는 편입니다. 무언가 일을 벌이려면 돈이 필요하더군요. 학교 매점, 공방, 공구들, 짚라인, 재봉틀, 방방장, 자전거 모두가 돈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한때는 마을 일까지 포함하여 1억이 넘는 예산을 운용했습니다. 온갖 서류와 잡무에 파묻혀 지낸 시기였으니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시기였습니다.
학교는 그리 부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모사업으로 예산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예산은 학교 행정실로 교부가 됩니다. 즉 행정실의 입장에서 추가적인 공모사업은 추가적인 일거리입니다. 20만원 정도의 전동공구를 사고자 한다면 저는 공문을 올리고 주문요청을 합니다. 행정실에서는 결재가 완료된 뒤에 구매를 하고 영수증 처리 및 물품 등록을 해야 합니다. 한 건이 아니라 몇 천 만원 어치를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분명 번거로운 일이죠.
참으로 다행인 것은 행정실장님이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공통분모를 품고 있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의 유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번거롭게 느껴지는 일임은 마찬가지겠으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중요시하기에 기꺼이 해주는 것이죠. 상자텃밭을 만들 때는 좋은 흙을 주문해서 같이 삽질을 해주고, 학교 공방을 만들 때는 전기를 끌어와 전등도 달아주며 고장난 놀이터를 손 봅니다. 본연의 일이 아님에도 직접 나서는 것은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공통분모가 없었다면 저는 눈치를 보느라 이런 저런 공모예산을 끌어와서 활용하기 어려웠거나 자주 마찰을 빚었을 것입니다. 학교공방이 탄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점점 귀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거든요.
또 다행인 것은 교장선생님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말을 한다며 의아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몇 년 전만 해도 화단에 습관적으로 가래침을 뱉는 사람, 아이들이 운동장을 줄 맞추어 뛰지 않았다며 세워놓고 욕을 하는 사람, 점심시간에도 문제풀이를 시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게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교장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종결정권자의 입장에서 어떤 교사가 운동장 한 켠에 직접 집을 짓겠다고 찾아오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제 정신인가?'란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말렸을 겁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오히려 자재비로 쓸 수 있는 예산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저에 대한 신뢰와 별개로 이 또한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은 모든 공무원에게 이런 공통분모는 필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 공무원은 마을을 좋아해야 하고 주민을 귀하게 여겨야 하죠.

칼럼리스트 강환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