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내북면 법주리 굴뚝샘
(8)내북면 법주리 굴뚝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5.20 09:28
  • 호수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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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지내던 굴뚝 샘, 동네 안녕의 신앙지 되다
기우제를 지내던 내북면 법주리의 굴뚝샘의 모습.
기우제를 지내던 내북면 법주리의 굴뚝샘의 모습.

지금은 아무리 큰 가뭄이 와도 수리시설이 잘되어 있어 물 걱정 없이 모내기를 할 수 있지만, 천수답이 대부분이었던 옛날에는 모내기철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식구들의 생사가 걸린 절대 절명의 문제였다. 
비가 내리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던 당시에는 모내기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동네마다 한 밤중에 불을 밝히고 산으로 들로 나가 기우제를 지내고, 나라의 임금도 자신의 부덕한 죄를 빌면서 비를 내려 주시기를 간곡히 빌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기우제를 지내던 '굴뚝 샘'이 내북면 법주리의 동네 가운데에 지금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샘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으나, 1994년 9월 1일 세운 법주리 유래비에는 " 백제시대에 고씨, 임씨, 최씨가 정착하여 버드리라고 불리었다." 라고 기록되어 아마도 1,500년 전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있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굴뚝안과 같이 생겼다하여 굴뚝 샘이라고 불렀던 이 샘물은 물맛이 좋을 뿐 아니라, 가뭄이 들면 동네 아낙들이 모여 키(대나무로 만든 곡물 선별하는 기구)로 물을 까부르면서 정성을 드리면 삼일 안에 비가 오는 아주 영험한 샘물이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과학을 모르는 옛날사람들의 미신이라고 치부하겠지만, 자연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과 온 가족의 생명이 걸린 한해 농사에 대한 애절함, 그리고 마을사람들의 소통과 협동정신을 간과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 버드리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인 식수로, 동네아주머니들의 빨래터로, 영험한 기우제의 장소로 사용하던 이 샘은 어디서 물이 나오는지 보이지 않으나 흉물스런 폐가의 방바닥 밑을 지나 마치 굴뚝에서 연기를 내 뿜듯 물을 세상으로 내 보내고 있다.  
60년 전 굴뚝 샘 인근으로 시집와서 살고 있다는 한정숙(82)님은 "처음 시집 왔을 때는 밭 끝에서 물이 도랑처럼 흘러나와 온 동네 사람들이 바가지로 퍼서 식수로 이용하고, 또 주위에 널찍한 돌들을 놓고 공동 빨래터로 사용하였어요. 오래 전에 남편이 이장을 보면서 지금처럼 시멘트로 만들었지요. 옛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아 빨래도 하였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물이 많이 줄었어요." 한다. 
지금은 샘물 위 폐가처럼 몰골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법주리 주민들은 옛일을 잊지 않고, 음력 1월 14일이면 모두 나와 굴뚝 샘을 깨끗이 청소하고, 선택받은 제주들이 온 동네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건강과 안녕을 빌고 있는 신앙지로 남아 위로를 받고 있다. 
폐가와 주위 토지가 외지인 소유라 안타깝다는 주민들이지만, 굴뚝 샘을 아름답게 복원하고, 주위를 작은 쉼터로 만들어 법주리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정성으로 가꾸면서 서로 소통하는 영험스런 샘물로 남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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