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탄부면 구암리 공동 빨래터
(6)탄부면 구암리 공동 빨래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5.06 10:38
  • 호수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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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말의 소통 중심지 빨래터가
이제는 이끼의 터전으로 전락
탄부면 구암리에 남아있는 마을 공동체였던 빨래터가 이끼로 가득한 물웅덩이로 변했다.

우리네 엄마들이 모여 빨래를 하던 공동빨래터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었다. 퍼니기로 불렀던 질그릇, 대야, 광주리에 가득 담아 이고 온 빨래 감을 수북이 쌓아 놓고 빨래를 하면서 설움을 토해내고, 빨래방망이를 두들기며 한을 날리고, 동네사람들과 소통하며 소식의 집합장소였다. 물질물명의 발달로 세탁기에 더하여 건조기까지 보급된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옛날의 추억으로만 남은 생활문화유산이다. 텔레비전과 손에 달고 사는 핸드폰에 파묻혀 한마을에 살면서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사는 요즈음, 어머니들의 장소요 또 하나의 마을 공동체였던 빨래터. 지금은 흔적 찾기도 어려울 정도로 거의 없어졌지만 유산처럼 귀하게 남아있는 탄부면 구암리를 찾았다.
구암리는 옛날부터 마을 안에 거북모양의 큰 바위가 있다하여 구암(龜岩)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에 아홉 개의 바위가 있다고 구암(九岩)으로 개칭하였다. 옛날부터 관말이라고도 불리던 이 마을의 구바우길 73번지에 동네 사람들의 식수와 빨래터로 이용되던 '공동빨래터'가 남아 있다.
시멘트 빨래판에 주위를 돌로 쌓아 잘 다듬어 놓은 빨래터 주위에는 꽤 큰 느티나무와 아름다운 정자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빨래터 웅덩이물은 정지된 상태로 이끼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옛날 빨래방망이소리, 아주머니들의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껄 하였을 빨래터가 오늘은 사람하나 없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우연히 만난 신영순(86) 어르신은 "내가 30년 전 구암리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이 빨래터는 물이 맑고 풍부하여 식수로도 사용하였고, 또한 물의 흐름이 좋아 비누 빨래를 하는데도 붕어등 물고기도 많았어요. 그때는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물 길러오는 사람, 보리쌀 씻으러 오는 사람, 밤새 사용한 기저귀를 빨러 온 새댁들로 시끌벅적 했지. 동네 여자들의 이야기로 소문이 무성하고 서로 소통하고, 또 한을 달래는 장소였어요."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또 "1990년경부터 경지정리가 되면서 빨래터의 물길이 반대로 바뀌어 물의 흐름이 나빠지고, 내부 모습도 많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집집마다 펌프를 사용하고 또 세탁기를 사용하면서 빨래터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물도 많이 줄었어요. 가을이면 주위에 심어 놓은 나무에서 낙엽까지 떨어져 쌓여 이제는 물고기도 없어지고, 이끼로 가득한 물웅덩이로 변해 버렸다"고 너무도 아쉬워하신다.
마을 사람들의 여름쉼터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빨래터 언덕의 건물 한 구석에는 음료수 판매기로 보이는 물건이 속을 비운 채 먼지만 가득 쌓여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서글프게 했다.
집집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고, 현대의 공동빨래터인 빨래방도 동전만 넣으면 작은 빨래부터 이불은 물론 운동화까지 간편하게 세탁과 건조가 되는 세상, 공동빨래터를 다시 부활 할 수는 없겠지만 올 여름에는 관말의 빨래터를 깨끗이 정비하여 동네사람들이 시원한 정자나 쉼터에 앉아 맑은 물을 바라보면서 정담을 나누는 관말의 소통장소로 복원되는 꿈을 꾸어 본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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