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노년생활
슬기로운 노년생활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2.25 09:26
  • 호수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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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정말 그런 거 같다. 이제 60세나 70세는 노인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젊다. 80세가 넘으면 조금 나이가 든 노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회갑연 때 찍은 사진 속의 아버지는 정말 노인 같은 데 말이다. 
우리나라는 65세부터 노인을 인정해주고 기초연금 등 각종 혜택을 준다. 일부에서는 정년을 연장하고 노인의 기준을 올려야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우리 약국에 90세가 넘었는데도 정정하니 혼자 병원에도 다니고 약도 지으러 오시는 분이 몇 분 계신다. 그 분들은 그 정정함으로 보아 분명 100세를 넘게 사실 거라고 본다.
나도 우리나라에서 정한 노인기준을 넘어섰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직 일을 하고 아직 글을 쓰고 책도 많이 읽어 아직 마음은 젊은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슬퍼할 일만은 아닌 거 같다. 청년기의 철없던 시절을 지나 중년기의 고달픈 시절을 지나 지금은 그나마 마음편한 노년기가 아닌가.
언제 부턴가 내 자신을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동동거리며 시간이 없다고 할 게 아니라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일이 없을 땐 늦잠을 즐기는 나였다) 다음 날부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며 새벽 5시에 일어났다. 10분간 명상 겸 복식 호흡을 하고, 찻물이 끓을 동안 그리고 조금 식을 동안 맨손 체조랑 스쿼드 등 운동을 했다. 그러면 땀은 나지 않아도 등이 따듯해져 온다. 그러면 녹차를 우려마시며 책을 본다. 그렇게 출근하기 전 2시간 가량을 알차게 보낸다.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잠자리에 들면서 언제 5시가 되나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공직이나 직장에서 물러나 하릴없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무료할까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다. 날마다 출근하던 직장이 없다면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은퇴 후의 삶을 위해서 누군가는 40대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각종 자격증을 따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작년에 퇴직 준비 기간이었던 우리 제부는 정말 신이 났다. 해군 대령이었던 그는 출근을 하지 않게 되자 수제 맥주를 배우러 다니고, 제빵 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빵을 만들어 나누어 먹다가 이제는 지인들이 주문하는 빵을 만드느라 너무 바쁘다. 
"백년을 살아보니"를 쓴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의 황금기는 65세부터 75세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기가 아닌 것에 놀라웠다. 그럼 나도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직장에 매여서 가족 때문에, 돈벌이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그동안 하고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은퇴 후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보람을 느낀다면 정말 인생의 황금기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꿈이었던 영어선생님은 되지 않았지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무엇보다 행복했던 어린 날을 불러와 동시를 쓰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마시며 책을 본다. 남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고전도 읽고 시집도 동시집도 읽는다. 나와 다른 시대를 살다간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끼며,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삶을 엿본다. 책을 보며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가질 것이고, 내 삶을 들여다 볼 것이다.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끌고 갈 것이다. 이만하면 슬기로운 노년 생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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