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 50여년 역사 지역문화유산 세중 떡방앗간
[오래된 가게] 50여년 역사 지역문화유산 세중 떡방앗간
  • 송진선
  • 승인 2021.02.04 10:23
  • 호수 5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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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아닌 시골마을에 있는 군내 유일 떡방앗간
50여년 역사, 주인만 4번 바뀌었지만 지역문화유산 충분
50여년 역사를 간직한 채 4번 주인은 바뀌었지만 지역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충분한 세중 떡방앗간.

보통 떡방앗간은 면소재지이든 읍소재이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해 있기 마련이다. 현재 떡방앗간이 위치한 곳은 보은읍소재지에 8개, 면소재지에는 마로면과 삼승면, 회인면, 내북면에만 있다. 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 떡방앗간인데 마로면 세중리에는 마을 안에 떡방앗간이 있다. 소재지가 아닌 마을에 떡방앗간이 있는 곳은 군내에서는 세중리가 유일하다. 2, 30년도 아니고 동네 어른들 모두가 5, 60년 역사를 추산할 정도로 오래된 가게다.
작은 시골동네에 떡방앗간이라니! 전무후무한 세중 떡방앗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 무엇이 있길래 작은 시골동네에서 방앗간이 운영될까? 많은 궁금증을 안고 설명절을 맞아 떡국떡을 많이 뽑는 떡방앗간을 찾았다. 그곳도 읍내 방앗간 정도는 아니지만 대목을 보고 있었다.

기계에서 막 나오는 따끈따끈한 먹음직스런 가래떡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기계에서 막 나오는 따끈따끈한 먹음직스런 가래떡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시골마을 방앗간은 보은군내 유일
조홍식(66)씨와 이덕순(59)씨 부부가 운영하는 세중 떡방앗간은 떡을 찌는 곳과 고춧가루 등 각종 농산물의 가루를 내고 들기름을 짜는 공간을 구분해 놓았다. 평소에는 이덕순씨가 혼자하지만 대목인 요즘 떡은 이덕순씨와 큰 딸이 작업을 하고, 기름은 조홍식씨가 맡아서 작업을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세중 떡방앗간에 가래떡도 뽑고 들기름을 짜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다. 방앗간에는 동네 돌아가는 얘기, 코로나 얘기, 어느 동네 누가 아파서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 등 그 옛날 빨래터처럼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물에 불린 쌀을 빻느라 돌아가는 기계소리, 빻은 가루를 찌는 시루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한쪽에선 찐 쌀가루를 틀에 쏟아놓고 기계 속으로 밀어넣어 뽑아지는 떡가래를 크기에 맞게 가위질을 하고 잘린 물속에서 뽀얀 가래떡을 들어올려 굳어지게 그릇에 담고 주인 손만으로는 부족하니 옆에서 거들 정도였다. 대목임에 틀림이 없다.
들기름을 짜는 곳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조홍식씨는 물로 씻고 돌을 걸러 바짝 말린 들깨를 볶고 복은 들깨를 기계에 넣어 다시 한 번 찌꺼기를 걸러 이것을 유압기계에 넣고 기름 한 방울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600㎏무게의 유압기계를 눌러 기름을 짜내고 있었다. 들깨에서 고소하고 진한 들기름이 쪼르르 통에 담기고 들기름병으로 많이 사용하는 2홉(180㎖)짜리 소주병과 2리터 용량의 생수와 소주 플라스틱통에 가득가득 담았다.
세중리에 산다는 할머니는 유모차에 들깨를 싣고 나와 설 때 먹을 것이라며 들기름을 짰다. "우리도 먹고 자식들에게도 줄 것"이라는 할머니는 "우리같은 늙은이들은 차도 없어서 시장에 가기도 힘든데 방앗간에 전화면 하면 집에까지 와서 쌀하고 들깨도 실어와서 떡도 하고 기름도 짜주니까 편하지"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말속에는 세중 떡방앗간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세중떡방앗간 고객은 주변 동네 사람들
세중리 할머니처럼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소재지나 시장도 아니고 동네에 떡방앗간인데 과연 생산성은 있는 것일까? 점점 궁금증이 커진다.
106가구인 세중리에 떡방앗간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공동체의 힘이 여전히 작동되기 때문일 것으로 보였다.
세중 떡방앗간 영업권은 세중초등학교 학구인 세중리와 변둔, 갈전, 한중, 원정2리, 그리고 경북 중률1·2리, 수봉리이고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고객이다. 이 권역의 주민들은 동네 방앗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충성도 높은 고객이다.
한중리에서 왔다는 다문화가정의 한 어머니는 "결혼한 지 23년이 됐는데 시집온 후 계속 세중 떡방앗간을 이용하고 있다"며 "떡도 하고 기름도 짜고, 할 게 많아서 전화하면 실러 오고 편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집 사람들도 좋고 또 오랜 단골이니까 주인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줄 알고 반가워한다"며 "읍내나 관기 시장방앗간은 나갈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세중리 새뜸에 산다는 황모(67)씨는 "가래떡 뽑아서 아들하고 딸한테도 부쳐주고 우리도 먹을려고 한다"며 "동네 가까이에 방앗간이 있으니까 멀리 갈 필요도 없고 차없어도 오기 좋고 우린 아주 옛날부터 이 방앗간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동네 주민들이 세중 떡방앗간을 이용하면서 지지해주기 때문에 세중리라는 작은 시골마을인데도 떡방앗간이 수십년간 뿌리를 내리고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의 제일 큰 힘은 주인들의 성실함과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을 대하는 자세, 고객들에게 심어준 신뢰, 그리고 세중 방앗간이 개인 방앗간이지만 우리방앗간이라는 공동체적 힘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기름을 짜는 유압기계들.
바로 짠 고소하고 진한 들기름을 잘 씻어 물기를 제거한 병에 담고 있다.

#세중 방앗간 기름틀집에서 시작
세중 떡방앗간이 있는 곳은 마루장터라는 경제활동이 이뤄졌던 곳이다. 농협의 전신인 금융기관이 있었고 약방이 있었고 정미소가 있었고 점방도 세 개나 있었다. 지금도 세중리 입구 세중초등학교 교문 앞쪽에는 마루장터라는 표지판이 서있다. 마루장터는 원래 도로명으로는 세중↔한중간 지방도 아래쪽에 형성됐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화령장, 원암장(현재의 삼승 원남장), 청산장, 마루장을 보러온 장돌뱅이들이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곳이 있었는데 고 박한종씨, 그리고 보은문화원장을 지낸 고 박대종씨의 엄마가 이것을 운영했었다.
세중 사람들은 지금도 그 집을 세중 대문집이라 부른다. 그러다 박한종씨가 이곳에서 기름틀집을 차려 운영했었다. 지금은 유압으로 누름판을 눌러 기름을 짜는데 당시는 사람이 기계를 돌려서 기름을 잤다. 들기름 자체도 귀했지만 들기름을 얻는데 엄청난 사람의 수고가 있어야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기름틀집을 이어받은 사람이 청년 5명이다. 박한중씨가 방앗간을 팔고 청주로 이사를 나갔는데 청년 5명이 돈사를 하면서 기름틀집을 운영했던 것이다.
그 다음 방앗간을 물려받은 사람이 마로농협조합장을 지낸 고성대씨이다. 고성대씨는 자기 집에서 방앗간을 했었다. 이 방앗간을 물려받은 사람이 이진학씨이고 그다음 구경모씨가 세를 얻어 방앗간을 운영했다. 의욕적으로 방앗간을 운영한 구경모씨로 인해 세중 떡방앗간은 활력을 찾았고 주민들이 다시 세중 떡방앗간으로 몰렸다. 상당기간 운영하던 구경모씨가 관기 아버지가 하던 방앗간을 이어받아 나가면서 다시 운영을 멈출 상황이었는데 2005년 지금의 주인인 조홍식(66)씨와 이덕순(59)씨가 이를 인수한 것이다. 마로농협조합장을 지낸 김장식(78)씨는 옛날 기름틀집부터 따지면 세중떡방앗간의 역사는 80년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 조홍식씨는 배 과수원을 전담하고 부인 이덕순씨가 방앗간을 전담하는데 "대목이 아니더라도 매일 오전 9시면 방앗간 문을 열고 겨울철이면 저녁 5시에 문을 닫아요. 손님이 한명도 없을 때도 있지만 혹시 방앗간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있으면 얼마나 막막하겠어요. 그래서 항상 문을 열어요"라고 말했다.
가래떡 써는 기계도 들여놓고, 송편기계도 들여놓고 도토리가루나 표고버섯가루 분쇄, 미숫가루, 호두씨기름 등 읍내 시장 방앗간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게 시설을 갖춰놓았다.
이덕순씨는 처음 방앗간 인수할 때는 학생인 딸들도 거들어야 할 정도로 방앗간 일이 바빴다. 그때 방앗간 일을 도운 경험이 있는 큰 딸은 직장생활을 하다 들어와서 엄마일을 돕고 있다며 손발이 맞아서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앗간을 해서 큰 돈을 벌지는 못했어요. 시골 방앗간이 그렇잖아요. 규모도 그렇고 그래도 방앗간 하면서 자식(1남2녀) 공부 가르치고 방앗간 인수자금 마련하느라 배과수원 일부를 팔았었던데 도로 찾았으니 벌긴 번 셈"이라고 덧붙였다.
최선을 다하고 고객에 대한 신뢰는 꾸준하게 손님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수입산을 쓰지 않고 또 품질좋은 쌀, 지역에서 농사지은 들깨 등 지역농산물을 사용하니까 자연스럽게 맛으로도 이어져 계속 세중방앗간을 이용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사람은 동네에서 떡을 해먹었는데 맛이 없어서 소문을 듣고 주문한다고 하기도 하고 이곳이 친정인 세자매가 두말씩 여섯말 떡을 해가기도 하고 현미떡을 대놓고 해가는 사람도 있는 등 세중떡방앗간 이덕순표 떡을 선호하는 고객의 주민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마다 노령인구가 많고 예전처럼 떡을 많이 하지 않고 또 버스가 동네마다 들어가면서 관기로 나가는 사람도 많아 방앗간 이용고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덕순씨는 그럼에도 여전히 세중떡 방앗간을 이용하며 세중권역 주민들, 그리고 외지에서도 시골 떡을 주문하며 지지해주는 고객들 덕분에 방앗간을 유지하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지금도 마로면 세중리 삼거리에서는 떡시루 위로 뽀얗게 수증기가 오르고 탈탈거리며 피대 돌아가는 고추방앗소리, 삑하고 600㎏ 고압으로 눌러 들기름을 짜는 누름판 소리, 정겨운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찬 세중떡 방앗간을 볼 수 있다.
문의 : 043)544-3954
운영시간 : 오전 9시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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