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준다는 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 준다는 건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12.03 09:31
  • 호수 5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름이 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불러 주지 않는 다고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께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 속에서 우리가 그 이름을 알고 불러 주는 것은 일부이다. 중요한 건 이름이 없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름은 있지만 그 이름을 모르거나 기억하지 못 할 뿐, 그것 자체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며 자신만의 잣대로 재단해선 안 된다. 
흔히들 무명가수, 무명배우라고 할 때, 그들의 실력이 부족하거나 이름이 없어서가 아닌 자신이 직업으로 하는 분야나 일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음을 나타낸 호칭일 뿐이다. 요즘은 오디션의 홍수다. 절절하고 애타게 부를 수 있는 무대를 위해 절치부심,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진다. 
사연도 각각, 저마다 곡절 많은 인생사를 토해내며 실력을 뽐낸다. 하지만 만만치 않다. 가수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그 직업의 현장에서 제대로 노래하며 인기를 누리고 생활해 나가는 사람은 일부이다. 모두가 이름이 알려지고 불려 지길 간절히 원하지만 세상은 실력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무명의 시절은 잊혀진 이름의 시간이고 기억되지 못한 날들의 흔적이다. 중요한건, 그로인해 존재 의미마저 상실 되고 부정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다. 
2년여 전, 일제 강점기 의병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극중 대사 중에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이 이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먹먹하고 뭉클했다. 그렇다, 역사 또한 이름 한 줄 남기지 않는 무명들의 용기와 외침으로 지켜지고 변화해 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임금은 종묘와 사직을 버리고 야반도주의 길을 택했다. 남겨진 백성들은 의병이 되어 대대손손 이어온 강토를 지켜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체는 누구였던가. 흰 옷에 파릇한 죽창을 움켜진 이 땅의 이름 없는 농민 들이었다. 
반민주, 독재 세력의 전횡에 맞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목 놓아 외치며 6월 민주 항쟁의 주축이 된 이들은 '넥타이 부대'로 지칭된 수많은 시민들이었다.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알 수도 없다. 분명한 건 역사의 현장에 그들이 있었기에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오고, 정당한 민주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세월 따라 흐르다 보니 세상 도처에 숨어 있는 재야의 고수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어느 분야의 대가를 넘어 선 진짜 고수, 은둔 고수들이다. 결코 자신의 이름이나 재능을 뽐내지 않는다. 묵묵히 걸어간다. 걸어가는 그 길이 증명해 준다. 화려하지 않아도 되기에 알아주지 않는 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세상 탓은 결코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길이 역사요, 문화임을 자부하며 나아간다. 존경의 대상이지만 그 또한 중요치 않다. 
오늘은 수능일이다. 온 나라가 들썩인다. 비행기도 고사장 근처 상공을 날지 못하고 공공기관 근무자들의 출근 시간마저 늦춰지는 날이다. 50만 명이 넘는 수험생들을 일렬로 줄 세우기 위한 잔혹한 시험이다. 모든 학생의 가치와 능력을 오직 하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여 단정해 버린다. 백년 지 대계인 교육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하고 부정해 버리는 허술한 장치요, 제도이지만 거부하기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 수능의 결과 앞에 나름대로 자신의 청춘을 열심히 살아낸 수험생들의 수고와 고민과 아픔과 몸부림은 외면당한다. 
창창한 미래와 빛나는 내일을 매서운 추위와 함께 잔뜩 움츠리고 주눅 들게 만들어 버린다. 제도 앞에 녹아들었지만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다고 보이지 않는 게 아니다. 무수히 많은 이름들의 아들, 딸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길 응원한다. 
잘 알려진 김춘수님의 '꽃'이란 시에 나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을 되 내어 본다.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 받으며 연호하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꿈꾸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각자의 이름들이 욕되지 않는 이름, 꼭 있어야 할 자리에 함께 했던 이름, 한 사람의 인생에 아름다운 이름, 자신의 삶에 부끄럽지 않는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바랄뿐이다.
무명의 설움을 견뎌내고 있는, 그래서 존재의 가치를 외면당하는 모든 이름들이여! 
세상 많은 이들이 이름 하나 몰라준다고 푸념하지 말자. 나를 알아주는 그 누군가의 꽃이 되고 의미가 되며,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