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들의 수난
토종들의 수난
  • 편집부
  • 승인 2011.07.14 10:43
  • 호수 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원진(시인, 보은읍 강신리)

▲ 조원진
시골 사는 친구에게 토종닭 한 쌍을 얻어와 키우게 되었다. 닭장 크기에 비해 좀 허전한  듯 하기도 하고, 새벽녘 멀리서 들려오던 수탉 울음소리가 그립기도 하여 장날 병아리 몇 마리를 더 사다가 넣었다. 새로 사온 병아리 들은 토종닭 두 마리와 어울리며 잘 자랐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외래종인 병아리들은 부쩍 자라서 토종닭 보다 훨씬 몸집이 큰 수탉으로 변했다.

붉은 벼슬에 화려한 깃털을 치렁거리며 수탉은 마치 어느 후진국의 독재자처럼 거들먹거리며 토종닭 두 마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수시로 등에 올라타고 그 억센 부리로 머리를 쪼아대서 대머리를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 깡패도 그런 깡패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비명에 가까운 목청으로 울어대며 첫 새벽의 고요를 뒤흔들어 놓기가 일쑤였다. 그대로 두면 토종닭이 곧 죽을 것만 같고, 도저히 그 소음속의 새벽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수탉을 처단하기로 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면서 생각해 보니 동물이나 식물이나 서양에서 들어온 종자들은 한결 같이 공격적인 성향으로 토종들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들여와 풀어놓은 '베스’와 '블루길’이라는 외래종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들은 왕성한 식성으로 국토 경향각지의 호수와 개울에서 평화롭게 살던 우리 토종 물고기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먹으며 그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또한 늪에서는 식용으로 들여왔던 황소개구리와 애완용으로 들여와 최근에는 불교행사에서 방생용으로 쓰였던 '붉은 귀 거북’도 토종들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왕성한 번식력과 알레르기성 비염을 일으키는 독성으로 골치를 썩이는 식물 중에 '돼지풀’이라는 것이 있다. 꽤 오래전 경기도의 북한강 부근에서 맹렬한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여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이풀은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 식물로 한국전쟁 때 유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얼마 전 강산리 앞 도로가를 걷다가 마치 수박 잎처럼 생긴 낯선 풀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돼지풀 이었다. 엄청난 수의 인력을 동원해도 도저히 싹을 지울 수 없다는 그 공포의 식물이 드디어 우리의 주변에도 나타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물계의 황소개구리라 불리는 '가시박’은 2009년에 환경부로부터 생태교란 식물로 지정된 풀이다. 이 '가시박’은 경북 안동의 시설재배 농민들이 품질이 우수한 오이를 생산하기 위하여 접붙이기 대목용으로 도입한 북아메리카 원산의 식물이다. 이것이 안동을 벗어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 되어 자생 식물은 물론 농작물 까지 고사시키며 이 땅의 생태계를 초토화 시키고 있다. 이 식물은 최대 8m까지 자라는데, 여름철에는 하루에 30cm까지 자랄 정도로 성장이 빨라서 이것을 먹어 치우는 천적이 나타나지 않는 한 완전히 제거 하거나 개체수를 조절 하기란 불가능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생태계를 온전하게 보전해야하는 이유를 일깨우는 일화가 있다. 미역과 다시마 등 해초를 따서 먹고 사는 어느 평화스러운 해변 마을이 있었는데, 그 풍성하던 해초의 수확량이 점점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아예 자취를 감취를 감추고 말았다. 생계가 막막해진 마을 사람들이 원인을 분석해 보니 그 곳에 서식하던 해달의 남획에 있었다.  주로 성게를 잡아먹고 사는 해달의 값 비싼 모피에 눈이 멀어 마구 잡이로 잡는 바람에 결국은 해달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천적이 없어진 성게들의 개체수가 대책  없이 늘어나 해변 가의 해초들을 마구 먹어치웠던 것이다.

농약의 과다한 남용 탓인지 혹은 기후 변화의 영향 탓인지 확실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요즘 양봉 농가들의 한 걱정거리인 꿀벌의 감소도 생태계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꿀벌은 꿀도 생산하지만 식물들의 수분을 도와 열매를 맺게 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꿀벌의 감소는 단순하게 벌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상의 식물들이 결실을 할 수 없게 됨으로서 인류의 생계도 위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 생태계의 먹이 사슬은 서로간의 중요하고 밀접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베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돼지풀, 가시박 등 토종들을 위협하면서 생태계를 교란 시키는 이 동식물들은 인간들의 욕심과 방심이 만들어낸 재앙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소국가의 생사나 안위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제국주의의 못된 근성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의 생명과도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이 땅의 소중한 생태계를 지켜 내기 위하여, 현재 확산 중인 이 동식물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는 한편 외래종의 무분별한 유입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