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신라 신덕왕릉 지기의 삶
2년간 신라 신덕왕릉 지기의 삶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1.07.14 09:40
  • 호수 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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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참봉 벼슬얻은 박광용씨
▲ 능참봉 벼슬얻은 박광용씨

왕조 시절에 임금이 딱 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그가 바로 능참봉이다. 선조의 묘를 지키는 수장이니 천하를 호령하는 임금일지라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능참봉은 조선시대 능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던 종9품 벼슬로 지금 행정 직급으로는 8, 9급 정도 된다고 한다.

왕조시대도 아니고 민주 자치시대에 능참봉 벼슬을 얻었다면 어떨까? 보건소장을 지낸 박광용(71, 보은 교사)씨가 벌써 1년 2개월째 신라 53대 왕을 지낸 경주의 신덕왕릉의 참봉을 맡아 화제다.

능참봉에는 아무나 보임되는 것이 아니고 문중이더라도 학식과 덕망이 있어 존경을 받는 인물이어야 하는데, 지난해 5월 문중에서 적격자로 평가해 그를 신덕왕릉 참봉으로 보임한 것.

참봉 수행 중 직계 상을 당하면 사표를 내야한다. 선대가 명을 다해 돌아가신 일 조차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격함이 적용되는 순간이다.
2010년 5월29일 능참봉에 보임되는 임관식을 갖고 후손들로부터 잔을 받고 절을 받는 등 정식 예를 지낸 후 곧바로 참봉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당시는 박광용 참봉의 칠순과 맞물려 자식들은 “해외여행이나 가시지 뭐 그런 걸 하느냐고 하기도 했지만 관광버스 1대를 대절해 후손들과 함께 임관식에 참석해 우리 두 내외가 관복을 갖춰 입고 잔을 받고 절을 받는 행사를 보더니 아버지 잘 하셨다고 하면서 자식들도 감격스러워했다"며 “자식들도 조상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예 갖추는 일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룖고 말했다.

신덕왕 53대 후손인 박광용 참봉은 전체 능참봉 10명 중 유일하게 왕의 후손이 참봉을 지내는 것으로도 이름이 높다.

박 참봉은 매월 삭망(朔望 : 초하루 삭, 보름 망) 외에도 춘분제, 청명제, 추분제, 설, 추석제를 지내는데 예를 갖추는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경주 제를 지내기 하루 전 집무실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관복을 갖춰 입고 다음날 제를 지내는 것과 관련해 회의를 하는데, 집무실 밖에서는 참봉끼리 악수를 하며 안부도 묻는 등 모든 인사를 다 나눴다 하더라도 내실에 들어오면 다시 서로 맞절하며 예를 갖춰야 한다. 그런 다음 제례와 관련한 회의를 한다.

제를 지내는 날엔 새벽 3시에 기상해 목욕재개하고 4시30분 시조 박혁거세를 모신 숭덕전부터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는 등 제를 지낸다. 10개 왕릉을 돌아가며 제를 지내고 나면 6시가 넘는다.

이렇게 제를 지내고 음복하고 다시 보은으로 올라오는데, 한 번의 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2일을 꼬박 투자해야 한다. 보통 한 달이면 4, 5일을 이렇게 능참봉으로 지내고 있다.

설과 추석도 능제를 올리는데 경주에서 먼저 제를 지낸 후 다시 보은에 차례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오전 11시가 넘어야 차례를 지낸다. 그래도 박 참봉은 “후손된 입장에서 조상 모시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배우는 게 많다“며 "기쁘게 수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내년 5월29일까지 능참봉 임기인 박광용씨는 7월15일 제를 지내기 위해 늘 그래왔듯이 14일 오전 보은→상주→북대구→경주→숭덕전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제를 지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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