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어머니
친정 어머니
  • 편집부
  • 승인 2011.07.07 09:55
  • 호수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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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옥(보은군여성회관)
▲ 박영옥

나는 감자 꽃 피고 감자를 깰때 쯤이면 은비녀 찌른 쪽머리와 옥양목앞치마를 두르시고 아침밥 준비하시는 어머님 모습이 제일먼저 생각난다.

닭장 속 수탉이 날개 짓을 크게 하며 “꼬끼오~~ 꼬끼오~~" 목청이 터져라 울어대면 어머님은 곤하게 자고 있는 식구들 깰까봐 살그머니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얼개미 빗과 참빗, 작은 거울을 들고 툇마루로 나가신다.

툇마루 기둥에 거울을 기대어놓고 밤사이에 엉킨 머리를 얼개미  빗으로 고르듯 빗어 내리고 참빗으로 깔끔하게 빗어 가지런히 틀어 올려 은비녀 쪽을 찌르고 하얀 옥양목 앞치마 툭툭 털어 허리에 두르신다.

보는 이도 간섭하는 이도 없건만 음식을 만들기 전에 정성을 담아 몸단장을 하는 것은 맛있게 먹을 가족을 떠올리며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식구들이 먹는 음식에 머리카락 티끌하나라도 들어갈까 봐 정결하게 몸단장하고 부엌에 들어가시면 제일먼저 쌀 함박을 들고 할머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곳간 열쇠 다발을 가지고 쌀광으로 들어가신다.

광 한쪽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대자리 항아리에서 됫박으로 아침밥쌀을 퍼 담아놓고 대자리항아리에 쌀 푼 자국을 손바닥으로 고르게 펴놓고 자물통으로 잠그시고도 또 한 번 되돌아 잘 잠가졌는지 재차 확인하신다.

반질반질하게 윤기 있는 아침밥쌀을 한 톨이라도 흘릴까봐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 씻어 무쇠 솥에 밥물 맞혀놓으시고 어머님은 호미를 들고 보랏빛 감자 꽃 끝에 맺힌 이슬을 톡톡 털어가며 텃밭으로 나가신다.

이슬이 맺힌 감자 싹 밑을 살살 파헤쳐 토실토실한 감자 댓 톨과 반짝반짝 빗을 내며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듯 미끈하게 자란 가지 너 댓개 따서 들어오다가 호박넝쿨에 탐스럽게 달려있는 애호박하나 따서 들어오면 아침 반찬거리가 된다.

감자는 놋 숱 가락으로 껍데기를 박박 긁어 감자밥을 하기 위해 밥솥에 넣어 장작 불 붙여놓으면 타닥타닥 타들어 가면 무쇠 솥에서는 감자밥이 부글부글 끓어 난다.

가지는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고춧가루 살살 뿌려 들기름 넉넉히 두르고 달달 볶다가 파. 마늘로 양념을 하여 건져내고 호박은 새우젓으로 간간하게 간을 하여 새파랗게 볶아 통깨를 살살 뿌려놓는다.

그리고 뚝배기에 된장을 풀고 파, 고추 송송 썰어 넣어 화롯불에 올려놓으면 구수한 된장 냄새로 집안이 진동하고 바글바글 끓는 동안 무쇠 솥에서는 구수한 감자냄새를 품어내면서 하얀 쌀밥은 뜸이 들어간다.

어머님은 그렇게 아침밥을 다 해놓고 "얘야 ! 어서 일어나 밥 먹고 학교가야지. 어서. 일어나거라.“ 하시며 맛있는 냄새 배인 손으로 우리 등을 토닥토닥 해주신다.

나는 어머님의 따듯한 손길에 눈 비비며 잠에서 깨어 부엌으로 가보면 부뚜막 상위에는 숟가락 젓가락이 나란히 올려져있고 아침이슬 맞으며 따다가 들기름에 달달 볶아낸 가지나물, 새우젓으로 짭짤하게 간을 한 호박나물. 새콤새콤 맛들어가는 열무김치, 화롯불에서 바글바글 끓여낸 된장 등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특히 아버지상에는 돋보이는 반찬 한 가지 계란프라이가 더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상에 색다른 반찬이 올려져있으면 “난. 이런 건 먹을 줄 모른다. 너희들이나 맛있게 먹도록 해라." 하시며 우리 상으로 슬그머니 밀어놓으신다.

아버지께서 밀어놓은 계란프라이는 다시 어머님 손으로 건너가 우리 5남매에게 똑같이 나누어진다.
비가 오지 않는 틈을 타 농민들이 토실토실하게 익은 감자를 캐느라 분주하다. 장맛비가 한차례 지나간 후라 빗물에 썩은 감자도 있다고 한다.
나는 늘 요맘 때 쯤 엄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친정 엄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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