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꽃봉오리, 자식은 영원한 짝사랑"
"내 삶의 꽃봉오리, 자식은 영원한 짝사랑"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8.27 10:11
  • 호수 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은 사람, 조 옥 어르신 (1941~, 80세)
흙사랑 한글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딸을 인생의 꽃봉오리라고 말하시는 조옥 어르신.
흙사랑 한글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딸을 인생의 꽃봉오리라고 말하시는 조옥 어르신.

딸아,
엄마가 다니는 학교에 손님들이 오셨더구나.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지. 내 살아온 이야기 뭐가 있을까 처음엔 망설였지만 살살 풀어보니 네 엄마 삶의 보따리에도 이야기가 바리바리 쌓여 있더구나.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내가 제일 신이 나서 떠든 것은 자식들 이야기였어. 그럼, 엄마들 가슴에는 뭐가 들어있겠니? 온통 자식들뿐이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영원한 사랑이 자식들인 게지. 자식들을 향한 마음은 세상 모든 엄마들이 가진 짝사랑의 명제가 아닐까 싶다. 엄마들은 자식에 대한 영원한 짝사랑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그 기운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존재인거야.

딸아,
엄마의 삶은 너희들이 태어나면서 비로소 완성되었다. 젖을 빨며 웃음을 짓고, 고사리 손을 꼼지락거리며 잼잼잼을 하고, 돌 지나 말을 하고 걷게 되는 그런 모든 과정이 행복이었다. 엄마에게 있어 자식이란 존재는 위대하고도 아름답단다.
세상의 어떤 꿀보다 달콤하고, 어떤 향수보다 그윽하며, 어떤 꽃보다 어여쁘고, 어떤 낱말보다 아름답고, 영원히 싫증나지 않는 존재말이야. 듣고 또 들어도 정겨운 목소리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얼굴인게야.

딸아,
엄마는 보은군 교사리에서 태어났단다. 그 시절 어린 아이들이 그렇듯 공기놀이 하고 널뛰기 하고 친구들과 광주리 옆에 끼고 나물 뜯으러 다녔지. 친정에서 나는 큰 딸이었어. 큰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이 내게도 해당될지 모르겠네. 내 밑으로 여동생 하나에 아들 넷이 태어 나 고만고만 먹고 살 만 했어. 조모님은 특히 나를 아껴 주셨지. 음전하게 살라고 가정교육이며 예의범절을 찬찬히 가르치신 분이셨어.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고 어떤 남편을 만나는지에 따라 인생이 변한다며 음전하게 잘 지내다가 점잖은 신랑 만나서 잘 살라고 내 손도 쓸어주시고 내 머리도 빗겨 주셨지.
내가 스무 두 살 되는 해에 회북면 건천리에서 중매가 들어왔지. 신랑 될 사람은 스물여덟인데 점잖고 인물 좋은 신사라 하데. 男妹만 낳아 키운 단출한 집안이라서 내가 시집가도 식구 때문에 고생할 일은 없을 거라고 하셨어. 내 조모님이 슬쩍 그 집 살림이 어떤지 보러 가셨었대. 큰방 윗목에 뭐가 잔뜩 쌓여 있더래. 내 조모님은 그것이 쌀가마니인 줄 아셨다나? 그래서 혼인을 허락하셨는데 신행하는 날 돌아가신게야. 나는 조모님을 잃은 슬픔에 울면서 트럭을 타고 시집에 가서 혼례를 올렸어. 독신한테 시집가게 되었으니 근동에서 제일 잘해 갔지. 중신아비 말은 "살림 할 줄 몰라도 된다. 귀엽게 살게 될 거다. 좋은 집안에 시집가니 내게 고마워 할 거다."라며 비단장사 같이 야들야들 말을 잘 했었지.

딸아,
다음 날 일어나서 부엌에 가 보니 쌀독에 쌀이 간당간당 하더구나. 조모님 생각처럼 방에 쌓인 것은 쌀가마니가 아닌 고구마 가마니였어. 그래도 어째? 이미 시집 왔으니 이 댁에 귀신이 되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게 그 시절 여자들의 숙명이었어. 울어 봐도 소용없고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 집 가풍대로 일하고 밥하고 농사짓고 소 키우고 삼 삶으며 열심히 살았어. 그런데 세상에나, 어른이 보증을 잘 못 서는 바람에 몇 마지기의 논과 밭과 집을 모두 날리게 되었어. 할 수 있어? 마을을 떠나 보은읍에 셋방을 얻어 나왔어. 노동으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지. 일당벌이 하러 집 짓는데도 다니고 삼밭에도 일 나가고, 별별 일을 다 했구나. 자식들 밥 안 굶기고, 시부모님 봉양하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또 일하던 시절을 보냈네.

딸아,
너를 낳았더니 시모님이 "쓸데없이 딸을 낳으면 어째? 아들을 낳아야 집안을 일으켜 세우지!" 그 말씀을 하시는데 왜 그리 서럽든지,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눈가가 짓물렀네. 네가 두 살 되던 해 아들을 낳았지. 시모님이 "아들 낳았으니 이제는 우리 집 사람 되었네" 라며 좋아하시데. 먹고 살기도 힘들어 겨우 끼니나 챙기는데도 아들딸을 구분하던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아파. 그래도 어째? 어른 말씀은 곧 법이고, 어른을 섬기는 것에 다른 이유가 없었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살았네.
그래도 그 아들들이 이 엄마한테 얼마나 효성스러운지. 내가 이제는 자식 키운 보람 톡톡히 보면서 살잖아. 지난번에 막내가 카드 주고 가면서 이렇게 말하더라. "엄마, 아끼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사 드시라."
하지만 내가 그런게 뭐가 있을까, 그냥 지금처럼 학교에 와서 같이 점심 먹고, 집에 가면 간단히 밥 챙겨먹고, 있는 옷도 얼마나 많은데, 그 옷 다 못 입고 갈 거 아닌가 싶네.

딸아,
너도 수시로 전화해서 나를 챙겨주니, 나는 정말 복 많은 할머니가 맞네.
"마스크 꼭 쓰고 다니고, 사람 많은데 다니지 말고, 건강에 좋은 음식 챙겨 먹고...." 했던 말 또 하고, 내 걱정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 챙겨.
엄마는 다 늙었으니 괜찮지만 너희들은 아직 살날이 창창한 사람들이야. 엄마 걱정 그만하고 너희들 잘 사는 것만 생각하면 돼. 엄마가 바라는 것은 그 뿐이지.

딸아,
엄마는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고 글 읽고 쓰는 것도 재미있어. 요즘은 여러 방송에서 노래를 자꾸 틀어주더라? 집에서 노래 따라 부르며 우리 자식들이 밥은 먹었는지, 엄마가 보는 방송 같이 보는지, 이런 생각하면서 저녁잠에 빠지네. 네가 보내준 과일도, 떡도, 카스테라도 냉장고에 가득하네. 이거 다 먹으려면 한참 걸릴테니 다음에 올 때는 그냥 와. 아무것도 필요 없고 너만 와서 얼굴 보여주면 돼. 엄마는 자식 얼굴 한 번 더 보고, 자식 목소리 한 번 더 들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맘속에 행복함이 가득 차오르는 법이거든. 영원한 짝사랑이 서럽지 않고 이리 행복할 줄이야. 너는 내 인생의 꽃봉오리야.
김경희 시민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