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 먼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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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7.09 09:14
  • 호수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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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환욱
보은교육협동조합 햇살마루 이사

다음과 같은 것들이 궁금합니다. 한 명의 기초학력 미달도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만 도리어 그런 아이에게 기초학력 미달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그 단어대로 자라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타고난 학습의 속도는 모두가 다른데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한 반이 되어 오히려 최대 11개월의 물리적 차이가 나는 교실을 만들어 고정시켰기에 학력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12월에 태어난 아이와 이듬해 1월에 태어난 아이는 며칠의 차이로 학년이 달라지고 이것이 적어도 12년간 이어지는데 이것이 합당한 것인지. 즉 배움의 속도가 아니라 태어남의 시점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편성되어 굳건히 유지되는 학년 제도가 최선인지 말이죠.

프랑스의 경우 승급과 유급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힘겹게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학년을 다니게 됩니다. 에듀인뉴스에서 한불교육교류협회 대표가 서술한 이들의 모습을 짧게 소개합니다.

프랑스 유아학교와 초등학교 초반에는 유급보다는 승급하는 학생의 숫자가 많고, 유급은 주로 초등학교 3학년 혹은 4학년 과정, 중학교 과정을 듣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학생의 경우 이루어집니다. 인상적인 것은 학년을 뛰어넘는 승급의 경우, 학업 성취도뿐 아니라 학생의 인성, 사회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학업이 뛰어나고 IQ가 높더라도 인성 측면에서 부적응 상태로 판단되면 승급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부분의 제도가 우리나라와의 큰 차이점으로 보입니다.

반면, 유급의 결정적인 원인은 학업성취도인데 유급은 단순히 다시 같은 학년을 듣는 의미를 넘습니다. 왜냐면 학업 성취 맞춤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이 부족한 영역만을 특별히 듣게 하면서 학생의 시간표를 조절하고 맞춤별 프로그램을 짜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초학력지도일지 모릅니다. 방과후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보다 말이죠.

프랑스의 학부모나 학생은 유급을 실패나 부족으로 간주하지 않고, 유급을 해서 부족한 학업을 보충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빨리 빨리의 문화가 아닙니다. 나이에 따른, 학년에 따른 위계가 전혀 없고 학업 우수학생, 미달 학생과 같은 서열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가능한 문화입니다. 나이 한 살 많다고, '선배님'이란 호칭으로 깍듯이 부르는 한국 학교의 교실 문화에서 유급은 지옥에 가는 일과 같을 것입니다. 일정 학업성취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성과 사회성이 부족해도 출석만 하면 졸업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제도와 문화에는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죠.

또 다음과 같은 것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들은 연결되어 있는데 유독 분절적인 학교의 교과목 체계. 내신을 잘 받으려면 곁의 친구가 상대적으로 점수를 못 받아야 하는 비인간적인 제도. 한 학기라는 긴 기간의 수업을 일별 혹은 주별 단위로 계획하여 학기 초에 공시하라는, 어차피 틀려지게 되는 형식적인 진도 계획. 사회규범을 가르친다는 미명하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풍토. 왜 배워야 하는지를 납득할 수 없는 내용과 수준들. 학생들이 한 눈을 팔지 못하게 하며 의식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대입제도 혹은 대학장사. 교육정책의 소비자는 학생인데 그들의 의견은 수렴하지 않는 정책수립과정.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까 두려워하는 모습들. 수년의 노력이 단 하루의 시험에 판단되어 버리는 잔인한 수능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에 최고로 적응을 잘하기 위하여 인성과 양심에는 관심을 줄 겨를이 없었을까요?

정작 그 노력의 정점에 섰던 일부 학생들은 어른이 되어 괴물의 탈을 쓴 권력자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집단권력 유지를 위하여 선택적이고 소설 같은 수사를 하며 입맛대로 증언도 조작하는 무리들. 음주운전 후 운전자 바꿔치기 시도를 해도, 어마어마한 마약을 밀반입해도 유전무죄라며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무리들. 시험에서 남을 이기는 것은 수재였으나 막상 정의로움은 둔재였던 그들. 그런 이들이 죄를 조사할 수 있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최상의 권력을 누리는 것을 보니 교육과 선발 시스템이 한참이나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학업이 뛰어나도 인성이 부족하다면 승급이 불가능한 프랑스의 제도가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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