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고운글] 동행
[결고운글] 동행
  • 보은사람들
  • 승인 2020.04.16 09:58
  • 호수 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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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식의주 어느 것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능력만을 놓고 본다면 말이죠. 자립은 아직 먼 이야기였습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줄 아는 것은 켜켜이 쌓인 직접 경험을 토대로 합니다. 글로만 혹은 영상으로만 익혀서는 실제의 능력을 갖출 수가 없습니다. 요리 관련 영상을 많이 보아도 직접 해보지 않는다면, 집 짓는 영상과 책을 많이 보아도 직접 지어보지 않는다면, 재봉틀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실습하지 않는다면, 수학 강의를 보고 실제로 풀어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상의 능력입니다. 단지 아는 수준인데 뭔가 갖추었다는 착각을 하고 멈추곤 합니다.
알기만 하는 것이 성장인지 모르겠습니다. 반쪽짜리 지식은 박제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백문이 불여일견'일까요? 백 번 들어 아는 것보다는 실제로 한 번 보는 것이 낫겠습니다만 한 번 보는 것보다는 한 번 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회적 경험보다는 되도록 여러 번 경험해보는 것이 낫겠죠. 지식과 경험이 몸에 스며들 기회를 충분히 주려면요. '백견이 불여다행'이라고 하고 싶네요.
누군가는 옆을 볼 자유와 여유를 주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가 아니거든요. 이런 유럽의 시도는 우리나라의 자유학년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1의 시기는 이에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초등학교 7학년을 보내는 셈이며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는 아직 어리죠. 다행히 중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온전히 옆을 보고 겪을 수 있는 전환기학교가 우리 충북에도 곧 생겨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전환기 학교가 생기는 것은 온전한 경험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학업의 스트레스에서 잠시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죠. 실은 모든 학년의 아이들이 평소에 온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아야 합니다. 건강이 최우선인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버티는 중이죠. 개별적 온라인학습의 한계를 경험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개별화되어 있으니 모든 부모님의 발도 따라 묶여있습니다.
저희는 작년 한 해 동안 아이들이 손을 부지런히 사용할 수 있는 경험을 마련해주고자 했습니다. 강사님들이 나무와 연장을 챙겨서 학교로 찾아가 많은 아이들을 만났고, 주말마다 목공교실을 열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모험놀이터와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쉬라고 해도 쉬지 않고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공부 좀 그만하라는데 계속 공부를 하는 진기한 광경이었죠.
타 시도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놀이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삼천만원을 썼지만 우리는 삼백만원에 이를 해냈습니다.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 한 아이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후기를 남겨주었죠.
삶과 놀이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약간의 경험 정도는 되었을까요. 예전에도 적었지만 언제나 꺼내고 싶은 기억입니다.
한편으로는 타 지역의 운동선수를 위해 수십억원이 사용되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낍니다.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의 경험교육을 위해 애쓰시는 많은 마을활동가 분들은 예산을 비롯한 지원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거든요. 마을교육과 그 중심에 있는 활동가 분들이 챙김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아이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학교와 마을에 차츰차츰 늘어나는 모습을 그립니다. 농사와 요리를 할 줄 알며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 줄 아는 과정이 대접받기를 바라며 올해도 학교 안과 밖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손을 격려하고자 합니다.
또한 코로나 19가 기후위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 또한 오랜 기간 경험하고 있으니 이에 대하여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구라는 어항 안에 살고 있으니 누군가 흘린 한 방울의 잉크가 결국은 전체로 퍼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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