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삼일운동과 코로나바이러스
[칼럼] 삼일운동과 코로나바이러스
  • 편집부
  • 승인 2020.03.05 09:31
  • 호수 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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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전 경 진
마로 한중/한살림

삼일절 주간이다. 입구마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게 아니라 사람마다 마스크가 풍경이다. 문득 101년 전에 일렁이던 만세운동을 생각해본다. 추산만 해도 당시 인구의 10%인 202만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일제의 폭력으로 사상자도 2만3천명이 넘고 체포구금도 5만명에 육박했다.
나는 우리의 역사가 이날을 분기로 비로소 민주공화정 정신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가들은 세계평화를 내세운 국제연맹을 창립하고 패전국의 식민지들을 독립시키며 민족자결원칙을 선포하게 된다.
당시 처음 겪게된 세계대전은 인류가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끔찍하고 심각한 폭력이었기에 이에 대한 전면적인 교훈과 각성을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면서 의식적으로라도 폭력에 대한 저항, 즉 영원한 세계평화를 염원하는 당위성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기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해 잔학하고 무자비한 폭압을 당해오던 상황이었다. 분명 나와서 만세부른다고 악독한 왜놈이 순순히 물러갈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얼마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삶이 파탄되고 육신이 부수어지고 생명이 몰수되는 고통을 충분히 예감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저마다 집밖으로 나와서 스스로도 비폭력을 실천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일까? 그것은 폭력에 대한 저항이었기에 수단으로서의 폭력성을 제외시킨 사람만이 갖는 내면의 힘을 직감적으로 이해했던 건 아닐까? 독립은 과정이요, 목적은 평등의 공화국이며, 그 수단은 폭력에 대한 실천적 비폭력 저항이었다.
이 모든 것을 담은 선언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게 됐다. 살아있는 선언은 삶의 가치를 표상한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 되고 안되고가 아니고 해야만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목숨걸고 얻은 평화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나라에 짙은 구름을 드리운 채 삼일절이 지났다. 마치 우산을 펴고 바닥에 쪼그려앉아 이 바이러스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모든 인간관계가 자신의 몸과 생활을 파괴시킬 것처럼 공포와 혐오가 내면에 깊숙이 배어들은 듯 하다.
그러나 개인은 모두 전체 사회와 밀접하게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이다. 능히 한사람으로도 온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았듯이 역설적으로 한 개인으로도 차분히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고 처신한다면 능히 질병의 위협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의학적 병리현상은 사회적 병리현상과 서로 연결되어 작용한다. 사회가 병들면 내 몸이 아프고, 내 몸은 또한 사회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어떤 질병이 우리를 병들게 했는가?
우리는 지금 타인을 배격하는 혐오의 폭력, 산천을 함부로 파헤치는 개발의 폭력, 금권에 의해 몸과 정신을 오염시키는 돈의 폭력을 경험해오고 있고 그것이 결국에는 내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과연 내 몸을 위협하는 바이러스인가? 매국노는 을사오적만이 아니다. 오직 사익을 위해 나라와 이웃을 팔아도 된다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에겐 여전히 국가도 지역도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사익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그들이 하는 말과 위선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결국 누가 사익을 챙겼는가를 살펴보면 단순한 것이다. 자신만 아는 세균과 바이러스는 결국 숙주마저 죽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전염병에 대해서도 보다 냉철하게 바라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의료복지와 공직기강이 타 국가에 비해서 매우 합리적이고 우수한 대응체계를 갖춘 국가이다. 예방대처만큼은 국가매뉴얼을 믿고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그 이상의 두려움과 불안은 오히려 자신의 몸과 정신건강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101년전 온 국민이 문밖으로 평화를 외치기 위해 나섰던 것처럼 지금은 전 국민이 자기 자신에게 평화를 되새기고자 문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한다. 그동안 자신의 몸에 가했던 폭력도 덜어내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진정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몸에서 생산하는 진짜 백신이다. 그리고 그동안 잘 살피지 못했던 가족을 세심히 챙기면서 일상의 살림을 점검하고 실천해보았으면 한다. 가족이야말로 사실 가장 안전한 병원이자 피난처이다.
또한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치사율보다 내심 더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격리와 혐오에서 오는 경제마비일 것이다. 이런 개인의 공포심리가 현실의 거리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된다. 공포에 마비된 경제를 봄볕을 받은 철든 농부처럼 서서히 움직여줘야 한다.
앞으로는 지나치게 예민하지도 않고 섣불리 과잉되지도 않는 중도를 가지고 적절한 문화활동과 소비생활을 통해 가까운 친구와 외부소통을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좋은 변화로 만들어가길 바란다. 오래전의 우리들은 평화를 선언했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민주공화국을 누리고 있다.
지금의 우리들이 내면에 평화를 다시 새기고 온갖 종류의 폭력에 저항하는 마음을 모은다면 오랜 후의 우리들은 바로 평화가 모두에게 평등해지는 그런 좋은 시대를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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