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용광로와 샐러드 볼
[칼럼] 용광로와 샐러드 볼
  • 편집부
  • 승인 2020.02.27 09:36
  • 호수 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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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리스트 이 만 동
조자용민문화연구회 대표, 도화리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선 안돼-

지난 주 보은신문에 실린 한 칼럼의 제목이다. 여기서 '굴러온 돌'은 타 지역에서 보은으로 귀농·귀촌한 사람들이고 '박힌 돌'은 보은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살아온 사람들을 뜻한다. 칼럼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근 보은에서 벌어진 군수의 친일 망언에서 비롯된 소환서명운동 주최 측의 대다수가 '굴러온 돌'들이다.
그들은 보은의 문화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언론의 일방적인 편파 보도와 군수를 싫어하는 몇몇의 의견에 동조하여 퇴진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낸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은에서 태어나서 자란 필자의 어린 시절 벼농사 경험을 또 한 예로 든다. 보은으로 귀농·귀촌해 온 사람들을 벼농사에 해를 주는 잡초인 '피'로 비유하면서. "'피'란 놈은 발아하면서부터 논을 야금야금 파헤치고 모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모가 자라지 못하게 하면서 논바닥을 장악한다.
그렇게 되면 벼 수확이 줄어들게 되고 그걸 '피농'이라고 했다. 지금 보은의 상황이 그러하다.
보은사회를 헤집고 들어온 극소수의 귀촌인들에 의해 추진된 주민소환운동이 성공할 경우 보은군은 '피농'의 고통을 겪게 되며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나는 위 칼럼을 읽으면서 필자의 귀농·귀촌인에 대한 편협성과 그릇된 잠재인식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단순한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보은을 대표하는 언론의 책임자라는 점에서 그 우려는 더욱 컸다.
귀농 귀촌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은이 좋아서, 심사숙고 끝에 보은에 정착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필자는 벼농사를 망하게 하는 잡초인 '피'라며 비하하고 있다.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살고 있고,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제 2의 고향인 보은을 망하게 하고 싶은 귀농귀촌인들이 있을까? 아니다!
그들 역시 비록 박힌 돌들과 생각과 방법은 다를지라도, 보은군의 발전과 군민들의 행복을 위해 선의의 정책 건의와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도 보은군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의견을 개진할 정당한 권한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소환서명운동도 마찬가지다. 소환제도는 법으로 정해진 민주주의 제도이며 주민들에게 주어진 권리인 것이다.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정확한 구성비는 모르겠으나, 혹시 필자의 주장처럼 주민소환운동의 주도자들이 소수의 귀농·귀촌인들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소환 찬성 서명을 한 무려 4천600여 명의 군민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 역시 전부 귀농·귀촌인들일까? '굴러온 돌, 박힌 돌'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군민들의 화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는 단어이다. 공인이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 시대로 돌입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 마다 귀농귀촌 인력 유치를 위한 각종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다.
보은도 예외가 아니다. 귀농·귀촌인 유치 지원책을 점점 더 확대 강화하고 있고 그 성과도 좋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 등 해외 인력을 유치하려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보은군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8년간 4천572 가구에 7천66명의 도시민들이 보은으로 귀촌했다. 연령대는 30대 이하 17%, 40대 19%, 50~60대 55%, 70대 이상 8%이다. 30~50대 청장년층이 67%이다. 보은군이 젊어지는데 귀농·귀촌인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고령화된 보은군의 자연 감소 인구는 늘어나고 귀농·귀촌인 수는 늘어나서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비율이 역전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때도 굴러온 돌 박힌 돌을 따질 것인가? 굴러온 돌, 박힌 돌은 없다! 단지 보은군민만이 있는 것이다!
필자는 글 말미에 "15만 출향인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향 보은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출향인들이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친일 망언 때문인지, 소환운동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은에서 출향한 이들도 타지에 가면 모두 다 '굴러온 돌'이라는 점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새겨 볼 일이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된 원인을 과거에는 '용광로' 이론으로 설명했었다. 세계 각국에서 밀려든 이민자들이 그들 고유의 언어, 문화와 전통을 모두 용광로에 쏟아 버리고,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샐러드 그릇' 이론이 호응을 얻고 있다. '샐러드 볼'에 들어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은 각기 고유의 맛과 개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재료들과 조화를 이루어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과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들과는 살아온 과정과 문화와 사고 체계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농촌에서 살아온 사람들끼리도 모두 생각이 천차만별인 시대이다. 따라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소통을 잘 하는 것은 민주사회 발전의 필수조건이다.
작금의 소환서명운동은 누구 한 사람이 미워서 떼를 쓰거나, 친일발언 한 가지만을 흠잡아 발목을 잡으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현재의 소환제도법 하에서 지방자치 단체장 소환 성공은 '하늘에서 별따기' 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환 서명을 시도한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다름을 이해 못하고, 소통을 부정하며 오로지 자기 도그마에 빠진 독선적 행정부에 대한 '힘없는 민초들의 최소한의 항의의 몸부림'으로 보여진다.
(*이 글 역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보은의 발전을 위해 다함께 화합하자는 마음으로 쓴 글이란 점에서 위 칼럼의 필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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