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점심을 먹지 말라고 했나?!"
"누가 점심을 먹지 말라고 했나?!"
  • 편집부
  • 승인 2020.01.09 13:44
  • 호수 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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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6일 군청 회의실에서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리며 군수님 오시기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내북 면민들에게 군수님이 들이닥쳐 호통 치며 한 말이다. 맘에 드는 면담 객이 오면 버선발로 달려 나갈 테지만, 귀찮은 내방객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니 우리는 군수가 올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었다.

끼니를 거르신 나이 칠십이 훨씬 넘은 내북 노인들이 허기라도 채우려고 빵을 우물우물 드시는 모습을 보며 울컥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나. 면민들이 점심도 먹지 못하고 한참이나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반말로 소리부터 지르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군수라는 사람이 면민을 향해 반말을 내지르는 이 나라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인가. 지금이 21세기 대명천지인가 아니면 조선시대인가. 온갖 복잡한 생각이 스친다. 억울하다고 막아달라고 군민이 한 마디라도 하면 도중에 자르고 들어와 자신의 주장만을 쏟아내는 군수님의 증세는 더 심각해진 것만 같다. 그의 사전에 소통이란 없다. 자신의 주장만이 제일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도시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불통을 넘어 먹통이다.
내북면 창리 282-3번지 땅! 2천400평 채소 심던 밭이다. 지난 해 12월 27일부터 쉴 새 없이 땅을 깊이 파고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물쓰레기를 25톤 덤프로 마구 퍼다 붓고 흙으로 덮어버린 문제의 땅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내북 면민들은 이 만행을 막아보려고 대책위를 꾸리고 무진 애를 썼지만 역부족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언 발 동동 구르며 두 눈 번히 뜨고 그저 드나드는 텀프차량 번호와 숫자나 세다가 애를 삭이며 참다 참다 못해 군수님이라도 만나 호소라도 해보려고 군청으로 쫓아 간 것이다.
연말연시를 좀 조용하게 지내려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해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급한 전화가 왔다. 내북면사무소로 달려가니 보은군청에서도 관계자들이 나와 있고 이장님 몇 분과 주민들도 걱정스런 얼굴로 서성대고 있다. 그 와중에도 발령은 났다지만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팽개치고 손을 흔들며 떠나는 전임 면장이 참 야속했다.

청주시 친환경농산과에 전화를 하니 모 비료업체에서 문제의 내북면 창리 소재 밭에 300톤의 비포장 비료를 공급하겠다는 사전신고를 했다고 답한다. 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해온 농민들이 보고 백이면 백 사람이 이건 비포장 비료가 아니고 악취가 심하게 나는 음식물쓰레기라고 단언한다. 음식물쓰레기를 보내고는 오불관언 내 일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는 청주시의 태도에 화가 치민다. 음식물쓰레기를 보내겠다고 보은군에 공문을 보낸 애초행위자가 청주시이니 즉시 현장으로 달려와 확인하고 쓰레기 불법 투기와 불법매립을 중단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청주시 친환경농산과 공무원은 자신들은 사전 신고를 받을 뿐이고, 보은군에 공문으로 통보를 한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식으로 도리어 민원을 제기한 나를 몰아 부친다.

백 번 양보해서 그 악취 나는 음식쓰레기가 비포장 퇴비라고 가정하고 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서 밭주인이 퇴비를 요청했다고 하자. 겨우 2,400평의 밭에 퇴비 30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30톤도 너무 많은 양이다. 게다가 청주시는 300톤만을 사전신고 받았다고 답하고, 보은군은 300톤에 더해 500톤을 추가 공급한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아! 어지러운 복마전이다.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누구를 믿어야 하나.

우리는 드나드는 덤프차를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제의 업체가 청주시에 신고한 800톤을 넘어 두 세배의 음식물쓰레기가 반입된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문제의 Y업체 대표가 몇 해 전 삼승면 달산, 선곡 등지에 2천여 톤의 음식물쓰레기를 불법 매립하여 물의를 일으킨 자와 동일인임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보은군이 음식물쓰레기 반입 공문을 받자마자 철저한 관리감독에 들어가야 마땅함에도 이를 소홀히 했음이 분명해 졌다. 아무리 업체명이 달라졌다 해도 임 아무개 대표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음식물쓰레기 반입을 초기부터 막아 나서야 했다.

보은군은 내북면에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통보해 달라는 공문만을 달랑 보내면 끝인가. 보은군 관계자가 기회만 나면 주창하는 법! 법! 법!적인 조치를 위해서도 반입 차량의 숫자를 세고 반입물이 퇴비가 맞는지 음식물쓰레기인지를 현장에서 확인했어야 한다. 또한 늦게라도 신고한 800톤을 넘는 순간 반입을 중단 시켰어야 맞다. 그것이 공무원이 할 일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보은군 관계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한 가지이다. 보은군이 나서서 내북 창리에 불법 매립한 음식물쓰레기를 모두 퍼서 되가져 가도록 조치하라는 것이다.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기 위해 군수님을 만나러 간 면민들의 말은 한 마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이렇게 몰려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빨리 돌아들 가라! 여기서 왈가왈부할 시간이 없다! 그 시간에 나는 당장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청주시를 방문하러 가겠다!"며 호통을 치고는 관계공무원들을 여럿 대동하고 출발한 군수님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물끄러미 바라보는 면민들의 분한 얼굴과 무안하고 멋쩍은 시선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군수는 우리가 돌아온 후에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데 내북 몇몇 이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왜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몰고 왔느냐"며 질책을 했다는 후문이다. 면민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앞장서서 고생하는 이장들에게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지는 몰할망정 군수가 돼서 그게 할 소리인가. / 오황균(내북 법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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