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과 움직임
동심과 움직임
  • 편집부
  • 승인 2019.12.19 01:27
  • 호수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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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환욱
보은교육협동조합햇살마루 이사

교실 뒤편에 시작했던 큰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적극적이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맡기고 싶었습니다.
구멍을 뚫거나 색칠을 하는 것, 드릴로 피스를 박는 것 등을 해보았으니 저와 아이들의 합동작품인 셈입니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미적으로 수려하지는 않지만 튼튼하게는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그물다락방이라고 지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2층이 그물이기 때문이죠. 확실히 그냥 바닥보다는 좀 더 안락하기도 하고 스릴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틈이 날 때 올라가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마치 원숭이같이 오르고 내리는 것 자체를 즐깁니다. 이 또한 예전에는 없던 즐거움이고 공간의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시시했던 교실이었으니까요.
저희 반은 7명으로 시작했는데 한 명의 아이가 부모님이 계신 지역으로 전학을 가서 6명의 아이들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아이는 분노의 조절에 어려움이 있어 약을 먹고 있는데 이 아이 덕분에 1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릅니다.
책을 쓰라고 해도 쓸 정도로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머지 아이들이 포용해주며 살아왔습니다. 다행이었던 것은 아이가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름 진정의 효과를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한 여자 아이는 4차원을 넘어 5차원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긍정을 넘어서 초긍정인 아이의 세상은 때론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 바탕에는 생동하는 동심이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간직하면 좋을 동심이 가득했습니다.
덕분에 상상이 아주 재미있고 풍부합니다. 아이가 쓴 시에도 그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음악회>
나무야 만들어져라
뚝딱뚝딱 만들어져라

톱은 바이올린 치고
망치는 실로폰
못은 춤추네

나무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나도 참여하고 싶다

목공을 주제로 한 시를 써보자고 했는데 5분도 안되어서 이렇게 멋진 시를 쓰더군요. 또 다른 시도 참 기발합니다.

<내 꿈은 CORN>
나는 옥수수가 되고 싶다
옥수수는 내 안에서만 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

그런 나는
미진이에게 먹혀
미진이를 간지럽힐 것

으아아아
콘에 파워

옥수수가 되어서 친구에게 잡아먹힌 뒤 친구를 간지럽히겠다는 이런 기발한 상상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시에 감탄한 후로는 이 아이를 시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실은 아이 하나하나가 시인이죠.
한편으로는 장려되고 지켜져야 할 동심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사라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동심은 곧 창의성이고 움직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심이 사라지며 뒷담화가 시작되어 교우관계가 어려워지고, 이해를 따지기 시작합니다. 때가 묻어가는 것이죠.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심은 최대한 오랫동안 간직되어야 하며 따라서 학교의 첫째 임무는 아이들의 동심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움직임은 사라지고 계산적인 움직임만 남습니다. 본질과 멀어지는 것이죠.
우리 사회의 첫째 임무 또한 어른들의 동심을 살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래야 콩밭에 있던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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