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사람들
시장 사람들
  • 편집부
  • 승인 2011.06.16 10:18
  • 호수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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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진 시인

꽤나 복잡했던 직업편력으로 이곳저곳 생활 전선을 전전하다가, 아내가 근근이 꾸려 나가는 식료품 가게에 합류 하여 채소 배달꾼이 된지도 어언 이태가 넘어 삼 년째 접어든다. 그만한 세월이면 웬만큼 장사에 대한 문리도 트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될 법도 하건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직도 손님을 맞는 일이 어색하고 콩나물이나 두부 한모 봉지에 담아 건네는 일이 어줍기  짝이 없다.

이러한 만년 풋내기 아마추어가 시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모두들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은 열심의 도를 넘어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들의 삶에 비하여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하는 지난 날 들에 대한 반성의 계기도 되었다.

첫 새벽 대전 도매시장을 다녀온 화물차에서 별빛이 듬뿍 묻어나는 싱싱한 채소와 생선들을 내려서 진열하고, 배달 물건을 실은 손수레와 오토바이 들이 분주하게 오가면서 시장 골목의 하루가 시작된다. 서로 어깨가 부딪쳐 통행이 불편했다는 예전 전성기 때의 활기찼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평안수산의 젊은 채연이 엄마가 힘차게 내려치는 생선 도마 소리는 늘 희망차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시장의 환경을 개선하고 상인인회가 중심이 되어 나름대로 자구책을 모색해 보지만, 지방 인구의 감소와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 속에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대형 마트들 때문에 재래시장은 어쩔 수 없이 사양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대형 업체들의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 앞에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은 열세일수 밖에 없다.   

이렇게 열악한 조건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고군분투 하는 시장 사람들 중에 경원상회의 박창숙 여사의 이야기를 빼놓으면 뭔가 양념이 덜 들어간 음식처럼 덤덤할 것 같다. 연륜이나 사업 규모로 보아 베테랑급이고 시장의 터줏대감으로도 손색이 없는 그녀의 첫 인상은 억척스러운 여장부의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누가 멋모르고 성깔 한번 건드렸다가는 거침없이 쏟아내는 걸쭉한 육두문자에 주눅이 들게도 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새롭게 발견 되는 그녀의 진면목은 사실은 다른데 있었다.

언젠가 상인회 회의를 마치고 마련된 회식자리에서, 상인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녀의 부군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 정답게 껴안으며 볼을 부비는 것이었다. 때로는 이렇게 애교 있고 살가운 모습으로 좌중에 풋풋한 웃음을 선사하며 여성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인정도 많아서, 배추김치를 맛깔나게 버무리다가 지나가는 채소 배달꾼을 불러 세워서는 김치 한쪽을 돌돌 말아서 한 입 가득 넣어 주기도 한다.

고단한 일상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주 한 잔의 매력도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모처럼 술추렴 자리라도 마련되면  그의 특기인 홍어무침이 나오기도 하는데, 손 또한 커서 접시 따위로는 성이 차지 않아 양푼으로 담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불편한 몸으로 첫 새벽 도매시장을 누비고 돌아와서도 지칠 줄 모르고, 시장 골목을 주름잡는 저 괴력에 가까운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경이로운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젊어 한때는 섬세한 소녀의 감성으로 아름다운 꿈을 키웠을 그녀를, 저렇게 억척스러운 투사의 모습으로 변화 시킨 것은 아마도 모진 세월이 아닌가 싶다. 시장세계의 치열한 경쟁  속 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땀과 눈물로 견뎌 온 수많은 날들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고, 오늘 날 저렇게 탄탄한 규모의 사업을 이루게 했을 것이다.

꿈 많던 날들은 덧없이 가고 어느덧 회갑을 넘긴 지금도 그는 변함없이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무정하게 흐르는 세월 앞에는 그도 어쩔 수 없는지 힘든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하기야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그 세월에 무쇠로 만든 마징가 제트 인들 남아나랴 싶기도 하다.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있지만, 행복과 자유를 추구할 권리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 행복의 참된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채근담(菜根譚)」에 있는 한 구절을 함께 음미해 보고자 한다.

채근담은 중국의 고전으로서 명나라 사람 홍자성(洪自誠)이 쓴 수상집(隨想集)이다.
憂勤(우근)은 是美德(시미덕)이나 太苦則(태고즉) 無以適性怡情(무이적성이정)이라.

삶이 걱정 되어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 하는 것이 미덕이기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수고하고 고생만 한다면 인간의 본성에 따르거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없으니, 살아가는 보람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연중 거의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는 우리 시장사람들 모두가 깊이 새겨볼만한 뜻이 아닌가 생각 한다. 휴식은 단순하게 하루 노는 것이 아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재충전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갖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아서, "그걸 몰라서 안 쉬는 줄 아느냐고, 쉬고 싶어도 못 쉰다"고 굳이 따진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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