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찾기
보물 찾기
  • 편집부
  • 승인 2011.05.26 09:39
  • 호수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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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애(iam-green@hanmail.net) 수필가님은 충북 청원출신으로 충북대 사회교육원 수필창작과를 수료했습니다. 김영애 님은 충북여성백일장에 입상하고 올림픽 2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충북 백일장 수필 준장원을 차지한 바 있으며 현재 보은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여러분께 알립니다. 결고운 글 칼럼 필진이었던 김철순 시인님이 지난달까지 활동하고 이달부터는 김영애 수필가께서 칼럼 필진으로 활동하십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겨우내 비었던 산과 들은 초록빛 잎새들이 다투어 채워 나가고 넓은 논과 밭은 농부들의 수고로움으로 그 빈자리가 메워진다. 요즘 부는 바람까지도 송홧가루를 노랗게 담고 있다. 만물을 창조하는 신들께서 아기자기한 물감은 이른 봄에 다 풀어내고 푸른빛만 남기셨나보다. 가로등의 후광을 입은 느티나무 여린 잎이 꽃에 버금간다. 나 역시 풀꽃 같은 풋풋한 시절이 있었겠지만 휙휙 스쳐지나간 세월이 세월인지라 한껏 치장하는 자연의 자태 앞에서 새삼 위안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 푸릇한 기운을 온몸에 묻히고 덤으로 식탁까지 나르는 일이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한낮의 햇볕은 점점 여름으로 치닫고 온갖 벌레들도 독을 품어가지만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다. 고추나물을 시작으로 미나리, 취나물, 고사리까지 조촐한 식탁의 주된 반찬이었는데 나물들의 줄기가 억세져서 짧은 호사도 끝이 나 간다.

그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인근의 숲길을 많이 다녔다. 임도나 농로를 따라 좁은 산길로 들어서면 비밀의 숲이라도 들어선 듯 기대로 부푼다. 지치도록 산자락을 누벼도 돌아올 때는 아쉽다. 시간에는 쫓기지만 좋은 터를 잡아 수확한 나물을 다듬으며 다시 한 번 산그늘의 넉넉한 품에 편안히 잠겨본다. 운전은 딸아이 몫이고 올 때는 나물바구니를 채워오니 실속도 꽤 차린 편이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나물을 뜯는 일은 조심스럽고 힘이 든다. 해충이 나타날까봐 조마조마하다보면 휴대 전화의 진동 소리에도 널뛰듯 펄쩍 뛰어오른다. 좀 거리가 있는 높이에서 취나물이 하늘거린다. 올라갈까 말까 망설이다 딸아이에게 묻는다. "얘, 저 취 본취만취할까?" 돌아오는 답은 "엄마, 취존(尊)해." 정말이지 이 계절이 주는 모든 것에 취존(取尊)하고 취존(醉尊)한다.

얼마만인지 산에 와서 종다리 소리도 들었다. 어릴 적 이야기가 주르륵 펼쳐진다. 예닐곱은 되었을까. 무료함을 못 이겨 김매러 가신 엄마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우리 밭이다. 가는 길에 뜻밖에도 작은 새를 잡는 횡재를 만나서 한걸음에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헌데 의외로 정색을 하며 잡으면 큰일 나는 새이니까 얼른 놓아주라고 하셨다. 잡을 수 없는 새가 있다니…. 그때의 아쉬움이 아직도 느껴지지만 아마도 제비 새끼가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이랑이 긴 밭에는 보리를 심었다. 종다리 소리는 들판에 가득 울리고 봄바람에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나부끼는 보리들은 푸른 물결이 되었다. 간혹 보리 포기 속에 둥지를 틀었는지 다급한 소리로 솟구치며 울어대는 어미새도 있었다. 밭 귀퉁이에는 어른 주먹만 한 파꽃이 벌과 나비 떼를 부르고 장다리꽃도 나비들을 모셔갔다. 엄마와 함께 김을 매는 아줌마들은 흰 수건을 두른 머리만 보이는데 웃음소리도 고랑을 따라 높이 파도쳤다.

여러 갈래의 단편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지금의 기억으로 완성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계속되던 엄마의 고된 노동 중에 그래도 그 기억을 표지로 장식하는 건 내 마음 편하고자하는 속셈일은 아닐런지….

 

봄이면 몇 번이고 되뇌는 짧은 옛 시가 있다.

봄산에서 내려오는 나뭇짐은
꽃이 반이나 섞여 있고
강나루가의 주막의 술은
물을 타서 묽기도 하여라
봄산에서 내려오는 나의 나물보따리는 알싸하고 향그러운 옛이야기가 그렇게 반이나 섞여 있어서 늘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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