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②-보은읍 삼산6리 통계슈퍼
〈오래된 가게〉②-보은읍 삼산6리 통계슈퍼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9.03.21 11:09
  • 호수 4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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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상권 지키는 57년 역사의 작은 점방
지금은 단골이 임대받아 통계슈퍼 전통이어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 오래된 것은 낡아서 못 쓴다며 부수고 허물어버려 감쪽같이 없애고 새것으로 바꾸는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오래된 것에 최신의 감성을 색칠해 보존하면서 오히려 빈티지한 느낌을 살려 그곳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새기게 하는 것도 요즘의 분위기다. 유럽, 일본의 100년 넘은 가게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것처럼 서울 등을 중심으로 전통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있는 빈티지한 오래된 가게. 지역, 마을이 관광명소로 뜨고 있다. 보은에도 전통을 갖고 있고 5060, 3040의 세대에게 추억이 있는 오래된 가게들이 있다. 성광사진관, 화생한의원, 배규정 사법서사 등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던 오래된 가게들이 아쉽게도 우리 눈에서 사라졌다. 본보는 이렇게 전통이 있는 지역의 오래된 가게를 찾아 지면에 소개한다.

보은읍 삼산6리 가막샘거리에 오래된 가게 통계슈퍼가 있다. 김영문·김점분씨에서 임대받아 김원자씨가 운영하고 있다.
보은읍 삼산6리 가막샘거리에 오래된 가게 통계슈퍼가 있다. 김영문·김점분씨에서 임대받아 김원자씨가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가게 두 번째 이야기는 오래된 점방 통계슈퍼다.
보은읍 삼산6리, 가막샘거리에 위치한 통계슈퍼는 통계상회였다. 통계슈퍼의 통계는 그 동네에 통계사무소가 있어서 통계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이다.
통계슈퍼라는 간판을 내건 김영문(83)씨가 이 동네에서 점방을 시작한 것이 그가 26살 무렵이니 57년이나 됐다.
요즘 대형화 아니면 기업에서 운영하는 편의점이 대세를 이루고 작은 점방은 거의 다 사라졌다. 작은 점방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24시간 편의점인 시유, 지에스, 세븐일레븐이 들어서서 편의점끼리 치열한 경쟁을 한다.
하지만 통계슈퍼는 그 틈에서도 여전히 골목상권을 지키며 간판 불을 밝히고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슈퍼마켓, 편의점과 당당히 경쟁하고 결코 밀리지 않는 점방 통계슈퍼 57년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고향 마로면 세중리에서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한 김영문씨가 자리를 잡은 곳이 가막샘거리이다. 통계슈퍼에서 천주교 쪽에 점방 하나, 방하나 딸려있는 초가집 세를 얻어서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하다가 매물로 나온 통계슈퍼자리의 점방을 샀다. 그때 돈으로 12만원이었는데 결혼하면서 받은 땅 2필지를 팔아서 8만원을 만들고 나머지 4만원은 빚을 냈다.
가막샘거리 주변, 봉평, 노티, 중초, 천주교 동네 등에서 물건을 사려면 거의 이 점방을 이용하는 등 목이 좋은 곳에 위치해 집값은 비쌌지만 욕심을 냈다.
김영문씨는 이곳에서 과자, 소주, 담배, 학용품 등 잡화를 취급했다. 그래도 목이 좋아서인지 시내 못지않게 장사가 참 잘됐다. 자식들 키우면서 점방을 구입하느라 얻은 빚을 갚는데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세중초등학교와 보덕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한성고등학교까지 졸업한 김영문씨가 서울이 아닌 보은읍내로 분가했을 때 정말 잘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했었는데 점방의 성업을 스스로 체감하며 보은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1980년 수해도 비켜갈 정도로 행운
마침 기회가 되어서 잡은 점방은 행운으로도 이어졌다. 1980년 수해로 보은시내가 물에 잠기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하는 등 보은군은 큰 피해를 입었었다. 통계슈퍼 주변으로 있던 논밭도 유실되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통계슈퍼는 지금보다도 지대가 더 낮았었는데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재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 지대가 높았기 때문이다. 집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점방 안에 있던 물건하나 버린 게 없었다. 시내는 가게마다 쓸 만한 물건 하나 건지지 못하고 물에 떠내려 보냈거나 갯벌 같은 진흙이 뒤덮어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시내 물건이 없으니 그 덕분에 장사도 잘됐다.
통계상회가 이렇게 장사가 잘되자 지금 택배점 등이 있는 쪽으로 점방이 더 들어섰다. 똑같이 잡화를 파는 점방이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새로 문은 연 점포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점방이 문을 닫은 후 다른 사람이 또 점방을 냈으나 이번에는 한 달도 안돼 문을 닫았다. 통계슈퍼만의 특별한 장사비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김영문씨 가게로 몰린 것이다.
수해 후 조남성 군수 재임시 도시계획이 본격 시행되었고 통계슈퍼도 지금의 건물로 집을 지었다. 얼기설기 이엉을 얹었던 초가집이 2층 슬래브 지붕의 양옥으로 탄생한 것이다.
코딱지만 했던 점방이 비로소 번듯한 가게를 갖췄다.

#57년 세월 지나고 보니 토박이 몇 안돼
점방 운영은 부인 김점분(72)씨가 도맡았다. 차량통행량이 많고 또 유동인구가 많고 또 봉평, 노티, 장신리 비룡소 쪽의 주민들 이용이 많아 장사가 잘됐다. 가게에 들른 지인들은 시내보다 장사가 더 잘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은 길목도 한몫했지만 그들의 서비스 정신이었다. 아침 6시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어느 때는 밤 12시까지 여는 등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시간을 지켜 운영했다. 자주 문이 닫혀있으면 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예 다른 가게로 가고 그러다보면 발걸음을 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가게 운영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이런 원칙을 세운 김영문씨는 부인과 점방을 운영하는 사이 시골 동네를 다니며 고추도 사오고 쌀도 사와서 중간상인들에게 넘기는 농산물 판매상을 했다. 구 싸전거리에 있던 남부상회를 통해 상주나 대전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에게 고추와 쌀을 넘겼는데 가격을 잘 받아 하루장에도 엄청난 돈을 벌기도 했다. 과거 쌀집에서 연탄소매도 했던 것처럼 연탄을 팔기도 했었다. 또 탱크로리 차량을 구입해 기름 소매를 다녔다. 기름보일러 난방 시작으로 수요가 많을 골목골목, 집집이 다니며 기름배달을 했다. 역시 재미를 보았다. 10여년 전쯤 70세가 넘으면서 체력적 한계를 느껴 유류사업도 접었다. 그리고 다시 통계슈퍼로 돌아와 부인과 함께 가게를 운영했다. 이 가막샘거리로 처음 이사왔을 때 계란 굵기 정도였던 느티나무는 이 동네 사람들이 윷놀이 장소, 그리고 통계슈퍼를 거쳐 가는 사람들의 만남의 광장 같은 곳이었다. 통계슈퍼에서 소주와 맥주, 마른안주를 사서 이곳에서 회포를 풀었다. 50년 이상 세월이 지난 지금 계란 굵기 정도의 느티나무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김영문씨는 의자도 만들고 함께 어울리기도 하는 등 통계슈퍼 앞 느티나무를 쉼터로 만들었다.
그렇게 어울렸던 많은 사람들이 마을 떠나거나 사망하기도 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마을에 사는 주민 중 김영문씨가 남아있는 유일한 토박이가 됐다. 26살 때 가막샘거리로 이사를 온 김영문씨가 원토박이가 아니면서도 이제 토박이가 된 것이다.

#친척같은 지인이 통계슈퍼 승계
물건 값 비싸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이문을 덜 남기고 싸게 팔았다. 대량으로 떼는 술을 제외하곤 마트값과 비교해도 결코 비싸지 않을 가격을 책정했다. 단골을 계속 붙잡는 묘수가 됐다.
이렇게 통계상회를 56년간 운영했던 김영문씨는 지난해 3월 친척같이 가까웠던 지인, 단골에게 가게를 넘겼다. 하루 종일 가게에만 매달려 있던 부인이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파서 못하겠다. 이제 좀 쉬고 싶다"는 호소에 인연이 깊은 단골 고객에게 통계슈퍼를 승계시켰다.
김영문씨의 부인 김점분씨를 친정언니처럼 여기고 의지하는 지인이다. 보은읍 장신리 비룡소 마을에 살다가 김영문씨가 살던 집을 사서 이사를 오고 또 김영문씨가 타던 차도 사서 끌고 다니는 등 인연이 아주 깊다.
"아줌마가 이 담에 가게를 하지 못할 때는 꼭 우리에게 달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어요. 지난해 가게를 정리하면서 가게를 달라고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세를 놓으면 더 비싸게 받을 수도 있는데 남 안주고 잘살라고 하시면서 임대료도 싸게 해서 우리에게 주셨어요."라며 고마워했다.
오는 3월 27일이면 김영문씨가 통계슈퍼를 임대놓은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김원자(63)씨는 통계슈퍼를 인수한 후 어느 한 곳도 수선하지 않고 김영문씨가 쓰던 그대로, 지폐를 넣던 책상 등 손때가 묻은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운영방식도 김영문씨와 같다. 문닫는 시간이 밤 11시로 줄었을뿐 김영문씨가 운영했을 때처럼 물건 값도 마트와 견줘 비씨지 않고 일부 공산품은 이곳이 더 저렴하다. 김원자씨는 "내가 최근마트랑 가격을 확인해봤는데 다시다, 설탕, 밀가루도 우리집이 300원, 500원 더 싸고, 쌀도 우리가게가 더 싸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김영문씨와 부인 김점분씨, 그리고 김점분씨를 친정언니처럼 의지하고 있는 김원자씨는 24시간 편의점에 절대 밀리지 않고 57년 역사의 점방 통계슈퍼를 작지만 강한 가게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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