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즐거움을 위한 취미 생활
참된 즐거움을 위한 취미 생활
  • 편집부
  • 승인 2011.05.19 09:19
  • 호수 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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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시인/보은읍 강산리)

지금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아 예전에 비하여 경제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는 현대사회에는 취미 생활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기업가들처럼 부유한 사람들만 즐기는 것으로만 알았던 골프도, 이제는 우리 지역까지 보급되어 웬만한 사람들은 골프채를 메고 골프연습장을 찾거나 필드를 누비며 '나인 샷'을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또한 서양의 부유층들이나 즐기고 기껏해야 국가대표 선수들이나 타는 것으로 알았던 승마도 이제는 널리 보급되어 우리고장에서도 말을 타고 보청천 둑길을 달리는 모습은 그렇게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고급스러운 취미가 아니라도 우리 일반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취미 생활도 많다. 문화원이나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취미생활 프로그램을 살펴봐도 참으로 다양하다. 풍물이나  색소폰, 기타,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에서부터 서예, 한국화, 공예, 풍수, 사진 등등 보람 있는 취미생활을 배우면서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민적 취미생활에 조차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이긴 하다.

취미생활 하면 떠오르는 젊은 날의 추억이 하나 있다. 70년대 무렵 「선데이 서울」이라는 주간 잡지가 인기를 끌었는데, 다른 내용들은 통 기억이 없지만 잡지의 거의 뒤 부분에 자리한 '펜팔'란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적어서 잡지사로 보내면 그 란에 이름과 약력이 올라 전국의 청춘남녀들이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자기 소개에 취미를 적는 칸이 있었다. 시골에 사는 가난한 청년들에게 무슨 특별한 취미생활이 이었을까마는 그래도 대개는 음악 감상, 여행, 독서, 영화 감상 따위를 적어 보냈다. 유행가요 한 곡 들을 싸구려 전축하나 없고, 읍내 출입도 잦지 못해서 1년 가야 영화 한 편도 보기 힘들면서도 그 게 세련된 것인 줄만 알고 의례 그렇게 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시장 골목에 편입 되어 살고 있는 지금은 변변한 취미 하나 가질 수없는 생활이 되었지만, 어느 한 때는 분재를 즐기는 친구를 흉내 내어 자연 훼손에 일조를 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바위 벼랑 틈에 간신히 살아 있는 나무들을 취해다가 화분에 옮겨 심고 갖은 정성을 들였다. 그러나 이미 뿌리가 많이 상하고 전혀 다른 환경으로 바뀐 나무들을 살려 내기란 쉽지 않았다. 어찌 살아남은 것들도 툭하면 가지를 자르고 철사를 감아 비틀어서 기형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을 자연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연출해본다는 같잖은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것도 어느 순간 시들해 지고 이번에는 란(蘭) 가꾸기에 빠져보기도 했다. 선비의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는 안목이나 깊이도 없이 그저 남의 흉내 내기에 불과 했다. 장날 새로워 보이는 것이 있으면 사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얻기도 하면서 분을 늘려 나갔다. 때로는 친구 따라 호남의 야산들을 수색하는 극성도 부렸었다. 그러나 정성과 솜씨가 부족했던지 남들이 누린다는 란을 가꾸는 즐거움의 호사는 크게 누려보지 못했다.

우선 대책 없이 불려온 화분들을 좁은 거실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때맞추어 물을 주고 잎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는 일도 여간 아니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란들은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했다. 정성을 들인다고 들여도 죽는 것들도 많았다. 이제는 이것들이 점점 거추장스러워 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의식에 변화가 생기게 된 기회가 왔다.

'숲 환경 교육센터'에서 운영 하는 '숲 해설가 양성 교육'에 참가하여 교육을 이수 하면서, 지금까지 취미랍시고 내가 해온 행위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몹쓸 짓이었는지 새롭게 인식 되었다. 어느 젊은 식물학자는 그의 저서'자연, 뒤집어 보는 재미'에서 화분을 가리켜 식물들의 교도소라고 표현했다. 식물들은 아름답다는 죄 하나로 화분에 심겨지는 순간부터 심은 사람의 손에 생사여탈을 맡긴 채 장래를 예측 할 수 없는 무기수로서의 수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사람이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자연 속에서 마음껏 햇빛과 바람을 받고 대지 속으로 뿌리를 뻗으며 자라는 것에는 비할 수 없다.

이때부터 화분에 심었던 나무들을 틈나는 대로 마당가 빈곳에 옮겨 심고 란 분들도 서서히 줄여 나갔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좁아빠진 화분에 갇혀 고통스럽게 만들어낸 꽃들보다 담장 밑에 수북하게 돋아난 난초나 시골집 장독대 옆의 봉숭아, 과꽃, 분꽃, 백일홍 등 우리 꽃들이 얼마나 더 정겹고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억지로 다듬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가운데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즐기는 모든 취미생활도 눈과 머리로만 느끼는 단순한 즐거움과 멋을 지나 가슴으로 느끼고 감동하면서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불과 두어 뼘 밖에 되지 않는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짧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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