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빠
나의 오빠
  • 편집부
  • 승인 2011.04.28 09:59
  • 호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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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시인/마로관기)

(오빠, 라는 말)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혀를 아래로 궁글리며 불러보는
오빠, 라는 말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넘쳐나게 하는
오빠라는 말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나에게 세상의 오빠는
단 하나 뿐인 줄 알았다

고등학생 적은 용돈을 덜어 내 저금통을 통통하게 채워주던, 소풍가는 먼 곳까지 빨간 모자를 사들고 와 내 머리에 얹어주고 가던, 엄마가 사온 긴치마를 짧고 예쁜 치마로 손수 바느질해주던, 여자도 배워야 한다, 바르게 살아야한다, 작은 나를 붙잡고 꽃다지 같은 나를 붙잡고, 세상사는 법을, 꽃피우는 법을 가르쳐주던,

사촌이나 친척 오빠에게 오빠라고 불러주면 왠지 나의 하나 뿐인 오빠에게 미안한 것 같아서 어릴 적 나는 다른 오빠들에게 오빠, 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어릴 적 나의 가슴은 아주 작아서, 병아리 같아서,

환갑의 오빠와 상가에 갔다 거기에 모인 오빠들에게
오빠, 술 한 잔 해, 오빠, 이것도 먹어봐,
그렇게 한번도 불러주지 못한 오빠들에게 미안해서
오빠, 오빠, 오빠, 마구 불러주면서
나 혼자 가두기에는, 내 오빠에게만 불러주기에는 너무 좋은 말
오빠, 라는 말
세상의 모든 오빠들에게 오빠, 오빠, 오빠, 마구 불러주면
세상의 모든 오빠들 오월의 나무처럼 힘이 나겠지 잎을 쑥쑥 내밀겠지

오빠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한, 나에겐 오빠가 한 분 있다. 위 의 시는 그 오빠를 생각하면서 지은 시다. 부모님 이상으로 나에게 사랑을 준, 평생 갚아도 나는 오빠에게 받은 사랑을 갚을 길이 없다.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월남을 자원해서 다녀온 오빠, 가난 때문에 더 이상 공부는 할 수 없었지만 그 마음만은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한다.
읍내에서 하숙을 하며 고등학교를 다니던 오빠가 집에 올 때면 영어책을 읽곤 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나도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고, 영어선생님이 장래 희망이 되기도 했었다.
내가 진학을 하지 못하고 집에 있을 때 공무원시험이라도 보라며 문제집을 사다줬는데, 나는 반항처럼 집을 나와 지금의 남편과 일찍 살림을 차렸다. 그 때 오빠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 많은 사랑 덕분일까? 나는 비록 영어선생님은 되지 못했지만 이름값 하는 시인으로 살고 있다. 못다한 공부도 하면서,
 오빠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 힘이 나서 공부도, 시도, 더 열심히 할 것만 같다. 그게 오빠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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