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봄, 봄이 왔어요
봄, 봄, 봄이 왔어요
  • 편집부
  • 승인 2011.03.31 09:55
  • 호수 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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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시인/마로관기)

그렇게 매섭게 맹위를 떨치던 추위도 계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가는 계절이 아쉬운 듯 뒷걸음질 치던 꽃샘추위도 이젠 물러가고 완연한 봄이다.

겨우내 웅크리고 들어앉아 책을 보거나 아님 따듯한 이불 속에서만 지냈더니, 몸무게가 4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살이 찌는 건 쉬워도 빼기는 어렵다는데, 게으름에 대한 죄 값이리라.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지던 농사일이 조금씩 그리워진다. 아마도 박완서 선생님의 산문집 '호미'를 읽고 나서 이지 싶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농장에 올라갔다. 이런저런 바쁜 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린지가 오래 되어서 블로그에 봄소식을 올려볼 참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지난 가을에 씨 뿌려 놓았던 유채나물과 상추, 시금치 등이 날이 따듯해지자 파릇파릇 잘 자라고 있다. 국화 싹도 파릇파릇 올라오고, 죽은 듯이 숨어 있던 매발톱꽃 싹이 뾰족이 새순을 내민다. 나 살아 있다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지난겨울 그 독한 추위를 잘도 견디고 잎을 내미는 것들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카메라에 그 대견한 모습을 하나하나 담았다.

그리고 하우스 한켠 빈 공간에 열무 씨앗을 뿌렸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호미, 박완서 선생님의 호미 예찬이 온 몸으로 전해져 온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 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선생님의 말처럼 호미는 여성적이다. 남자들에겐 왠지 괭이가 더 어울릴 것 같고.
밭 한켠에는 작년 늦가을에 심은 마늘이 뾰족이 잎을 내민다. 꼭 새의 부리 같다. 저 부리로 봄을 콕콕 쪼았을 것이다. 그래야 빨리 따듯한 봄볕이 나와 줄터이니.

밭가에 있는 목련 한 그루도 잎눈이 제법 도톰해졌다. 좀 더 있으면 솜털이 보송해질 것이고, 봄비라도 한 입 얻어 마시고 나면,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리고 길가에 있는 키 큰 산벚나무도 덩달아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마당 없는 집에 살면서 늘 꽃밭을 꿈꾸었다. 언젠가 마당 넓은 집에 살게 되면, 이런저런 꽃들을 심어보리라 늘 그런 꿈을 꾸었다. 아이들 셋 키우며 가난한 시인으로 살면서, 그런 꿈은 자꾸만 멀어져 갔다. 마당 없는 집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그러다가 농장이랄 것도 없는 작은 밭이 생기며, 나는 가꾸고 싶었던 꽃들을 심으려 밭 한 귀퉁이에 꽃밭을 만들었다. 그 꽃밭에는 그렇게 키우고 싶던 꽃들을 하나 둘 심는다. 장미도 심고 다알리아도 심고, 접시꽃도, 붓꽃도, 봉숭아도, 국화도 심었다. 더러는 얻기도 하고 사다가 심기도 한다. 나는 농장에 가면 그 꽃밭 앞에서 한참을 앉아 있는다. 가까이 두고 만날 보고 싶지만, 그렇게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디냐 싶다. 올해는 집 앞 골목에 화분을 여러 개 준비해 두었다. 그 화분에다가 꽃을 심으리라. 꽃밭이 없으면 화분에라도 심으면 될 거 아닌가. 봄이, 따듯한 봄이, 내 곁에 더 바짝 다가왔으면 좋겠다. 나의 꽃밭에 꽃씨 뿌릴 생각을 하니, 그 씨앗들이 하나 둘 태어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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