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생활을 위한 소고(小考)
문학하는 생활을 위한 소고(小考)
  • 편집부
  • 승인 2011.03.24 10:11
  • 호수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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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시인/보은읍 강산리)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하여 수시로 글을 접하게 되고, 때로는 부득이 하게 글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복잡한 서류의 작성에서부터 일기, 편지, 기행문 등 생활 속의 글들이나 시, 소설, 수필 등등 수많은 종류의 글들이 있다. 이러한 글들은 쓴 사람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하는 수단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말로 표현하면 대충 이해가 되는 것들도 글로 표현하기 위하여 막상 펜을 들고 원고지를 펼치면 눈앞이 깜깜한 그믐밤으로 변하는 것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글이나 한편 써 봐야지"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고 술술 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할 때가 많다.

우선 글을 쓰려면 무엇에 대하여 써야겠다는 주제를 선택하게 된다. 그 주제는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상의 일들과 우주 속 삼라만상의 자연 섭리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영감을 포착하기도 하고, 직접 겪었던 일이나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주제로 삼을 수도 있다.

神은 인간에게 가끔 신비한 영감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야속하게 금방 거두어 가기도 한다. 번개처럼 스친 기발한 생각이 짧은 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늘 관찰 하면서 더불어 메모하는 습관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어렵게 얻은 주제(글감)는 선방 스님의 화두처럼 머릿속에 넣고 다니며 몇 날 몇 칠이고 제 멋대로 굴러다니게 놓아둔다. 주제에 관련된 자료도 찾아보고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동안 그 생각은 잘 익어서 어느 순간 희미하게나마 얼개를 갖추고 윤곽을 드러낸다. 이때쯤 그 얼개를 원고지에 옮기게 되는데,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하면 기둥위에 들보를 얹고 서까래를 거는 것과 같다. 여기에 기와를 얹고, 벽도 바르고, 문짝들을 달아 놓으면 대략 집의 모양을 갖추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초고(草稿)를 완성하게 된다.

이제 한숨 돌리고 나서 이 초고를 다듬어 나간다.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며 호흡이 막히는 곳은 없는지, 불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꼭 필요한데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서 빼고 더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퇴고(推敲)라고 한다. 여기서 퇴(推)는 민다는 뜻이고 고(敲)는 두드린다는 뜻의 한자어다. 퇴고란 글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 777 ∼841)는 '승퇴월하문(僧推月下門)'이라는 시를 지었다.
한거린병소(閑居隣竝少) 이웃이 적어 한가로이 살고 / 초경입황원(草徑入荒園) 풀숲 오솔길은 황원으로 드네/ 조숙 지변수(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리를 잡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의 '스님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鼓)'로 해야 좋을지 그만 딱 멈추어 버렸다. 그래서 당대의 대문장인 한유(韓愈)에게 물었다. 한유는 잠시 생각하더니 '퇴(推)보다는 고(鼓)가 좋겠다'고 대답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인 한유는 왜 '퇴(推)보다는 고(鼓)가 좋겠다'고 했을까?

'민다'라고 쓸 때에는 바랑을 맨 스님이 날이 저물어 자신의 암자로 돌아온 것이 된다. 그저 문을 밀고 들어가 행장을 수습하고 잠자리에 들면 모든 장면이 끝나고 만다. 하지만 '두드린다'로 바꾸면 늦은 밤 스님은 외딴 집이나 낯모르는 암자를 찾은 것이 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신발을 끌며 동자승이 나올 것이고, 그 소리에 연못가 나무의 새들은 설핏 든 잠을 깨고 자리를 옮겨 앉기도 할 것이다. 손님을 맞이한 동자승은 탑을 돌아서 계단을 올라 주지스님께 손님의 방문을 아뢰고, 잠시 후에는 불 켜진 암자의 문살에 마주 앉아 차를 따르는 그림자도 비칠 것이다. 이렇게 글자 하나가 바뀌면서 시 속의 그림은 역동적으로 변하게 된다.

퇴고란 좁은 의미에서는 맞춤법과 맞게 어휘와 어구를 고치고 적절하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이지만, 크게는 작가의 의도를 독자에게 바르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시원한 소통을 지나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연결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탈고(脫稿)를 하게 된다. 탈고한 글은 이제 활자화 되어 독자들의 평가를 받게 되는데,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진폭이 클수록 그 글의 생명력이 길다. 이러한 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양서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받게 된다.

우리는 육신의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섭취하듯이 맑고 향기로운 영혼을 가꾸기 위한 자양분도 필요하다. 그 자양분은 신앙생활이나 명상 등을 통해서 얻기도 하고 문학하는 생활을 통하여 얻어질 수도 있다.

문학하는 생활이란 꼭 창작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읽는 것도 훌륭한 문학생활이다.

손길이 닿는 공간에 좋은 시집이나 수필집 또는 불멸의 고전 한 권쯤 놓아두고, 자칫 메마르기 십상인 우리들의 영혼을 위하여 화분에 물을 주듯 늘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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