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동안 영농일지 써 온 강효식씨
35년동안 영농일지 써 온 강효식씨
  • 류영우 기자
  • 승인 2011.03.24 09:10
  • 호수 9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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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역사가 아닌, 이제 마을의 역사
▲ 수북히 쌓인 강효식씨의 영농일기. 35년 전부터 영농일기를 써 왔지만 이제는 86년부터, 25권의 영농일기만 남았다.

기억은 짧고, 기록은 영원하다.
메모의 중요성은 재차 강조하지 않아도 어릴 적부터 누구나 알고 지내왔다. 그렇지만 이를 실천하고 완벽하게 몸소 실천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설령 메모를 한다고 하여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펜을 굴려 기록하는 것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메모라고 할 수가 없다.
메모의 기술, 숨은 비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기술들을 자신의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사업, 업무, 학습 등에 적용해 100% 이상의 자기만족을 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적자생존!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탄부면 평각리 강효식(60)씨는 35년째 매일 영농일기를 쓰고 있다.
강씨가 영농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76년 군 제대 후 부친 강영수(2006년 작고)씨와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농사일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해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매일 매일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영농일기는 시작됐다.  농사꾼이 되기 위해, 체계적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영농일기였다.

"처음에는 달력 뒤에다 적었지요. 그러다 다이어리라는 번듯한 공책이 나온 86년부터 더 체계적으로 꼼꼼히 적게 됐죠. 그 전에 달력에 썼던 영농일기는 이사하면서 다 없어져 버렸지만 86년부터 지금까지 25권의 영농일기는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86년 영농일기를 펼치자 가장먼저 고추가격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 2봉 7천원, 풍양 5봉 2만2천500원]
지금은 싼 고추씨가 한 봉이 2만5천 원 정도니 영농일기 한 구절 속에 세월의 흐름이 읽힌다.

86년도 주민세가 880원이었다는 대목을 지나 놉을 얻어 쓴 내용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모내기 할 때 함께 일 한 사람 33명. 1인 당 5천 원씩 16만5천원.]
[벼 베기 할 때 함께 일 한 사람 11명씩 두 번. 1인 당 5천 원씩 10만원.]

강씨의 영농일기에는 이처럼 영농소득과 농약·비료 등의 영농자재 및 각종 생활비 등의 지출내역도 빼곡히 적혀 있다.

또한 강씨 가족들의 즐겁거나 슬픈 일은 물론 마을 애경사와 큰 사회적 사건도 기록돼 있다.
"가끔 동네 사람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러 오곤 해요. 마을에 누가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묻고, 누구네 아들이 언제 장가를 갔는지, 누구네 집 잔치가 언제 있었는지 등도 물어보곤 하죠. 일기장을 열어보면 다 나와 있으니까 이것보다 정확한 것 없잖아요?"

하지만 그의 영농일기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체계적인 농사일정 점검이다. 그래서 강씨는 항상 2~3년간의 일기를 항상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읽어보곤 한다. 다가올 농사 준비를 위해 못자리는 언제 했는지, 농약으로는 무슨 약을 썼는지, 비는 어느 때 많이 왔는지 등의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농사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그가 이제는 3천600평의 논과 1천 평의 밭, 그리고 17마리나 되는 소를 키우는 번듯한 농사꾼으로 성장하는 데는 바로 이 영농일지의 힘이 컸다.

 

◆메모는 곧 절약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참 꼼꼼하셨어요. 우리는 돈 벌어 아버님께 맡겨 놓고, 천 원 한 장이라도 타서 썼을 정도였으니까요. 시아버지와 함께 장보러 나가서 시아버지가 돈을 치르는 집은 아마 우리 집밖에 없었을 걸요?"
강효식씨의 부인 김춘자(54)씨의 얘기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무를 때고 살았을 정도로, 시장에 나가 우동 한 그릇 사드시지 않을 정도로 알뜰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강효식씨가 그대로 이어 받았다.

아니, 메모를 통해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절약을 강씨는 실천하고 있다.
[심야전기 1년 통계: 2008년 98만원, 2009년 90만원, 2010년 125만9천100원]
[사료값 1년 통계: 2009년 396만500원, 2010년 400만원]

쉽게 접할 수 없는 통계들이 그의 영농일기에는 아주 꼼꼼히 적혀있다.
통계를 냄으로써 다음해 운영방안을 계획할 수 있고, 절약할 방안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료값이 많이 올랐어요. 지난 한 해에는 아끼고 아끼기 위해 동네에서 사료를 싸게 구입해 전년도와 비슷한 금액을 맞출 수 있었죠. 하지만 올해는 힘들 것 같아요. 동네에서도 구할 수 없을뿐더러, 사료값도 이제 1천씩 더 오른다고 하네요."

강씨의 집에서는 자동이체는 없다. 영수증까지 꼼꼼히 챙기는 그는 직접 은행에 나가 공과금을 납부한 후 영수증을 영농일지에 첨부한다.

"조합 사람들이 그래요. 자동이체로 쉽게 하라고. 하지만 이제 운동 삼아 세금 내러 나가는 게 습관이 돼 버린걸요."

참 알뜰하게 살았다. 이런 알뜰함 때문에 2006년 땅도 사고, 번듯한 집도 지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고 배운 알뜰함을 이제는 강씨의 아들이 닮아가고 있다.

"요즘 젊은사람들을 두고 게으르다는 말을 많이 해요. 좀 더 아끼고, 부지런해지면 지금보다 더 즐겁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지식과 시간이 기록되어 관리되면서 효율적인 자기관리 비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보고, 배우고, 느꼈던 그 많은 것들이 몽땅 공기처럼 흩어져 버린다면 너무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 되지 않을까?
오늘부터 메모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하루 하다보면 습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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