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는 지혜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는 지혜
  • 편집부
  • 승인 2011.03.10 10:09
  • 호수 8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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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호(청주 대성초등학교 교장)

2004년 3월 6일 속리산 수정초등학교 관사에 살던 때의 일이다.
집사람이 아침 일찍 일어나 문을 열려다 깜짝 놀랐다. 문을 옆으로 밀어도 잘 열리지 않았다. 밤새 70㎝에 가까운 폭설이 내린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일 먼저 학교장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일의 순서를 정하였다. 제일먼저 교육청과 협의하여 휴교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휴교한다는 사실을 비상연락망을 이용하여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전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알려 집에서 출발을 하지 않도록 하였다. 훗날 이야기를 들으니 다른 사람들은 연락이 늦어 집을 떠났다가 길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고도 한다. 지금 생각해도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을 먹고 교장 관사에서 학교로 향했다. 혼자서 학교를 지키며 바깥 경치를 보니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도 잠시 '우지직짝, 찌지직쫙' 햇볕을 받으면서 눈이 녹아 무게가 더 무거워져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기 시작했다. 정이품송과 황금 소나무의 가지도 부러졌다는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갑자기 '그럼 우리 학교는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났다. 본관과 연결된 후관으로 가는 통로 지붕이 무거운 눈에 짓눌려 움푹 들어간 것이 보였다.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간이 창고도 위험스러웠다. 집사람을 불러 사다리를 붙잡게 하고 괭이로 눈을 퍼 내렸다. 떡처럼 엉겨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가 않았다.

쉬엄쉬엄 하다 보니 이틀이나 걸렸다 둘째 날은 보은 김선생이 갤로퍼 차를 몰고 간신히 말티 고개를 넘어 학교에 와서 함께 눈을 치웠다.

법주 분교장과 삼가분교장에도 4륜구동차인 갤로퍼를 타고 어렵게 가 보았더니 크게 위험한 곳은 없어 다행스러웠다. 훗날 들으니 여러 곳에서 폭설피해를 입고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요즈음 구제역과 AI 조류 바이러스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진정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엄청난 피해가 나 축산농가의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디 축산 농가뿐이겠는가 소비자들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기값 때문에 걱정이 많고, 삼겹살이 비싸니까 상추나 깻잎 등의 채소도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 속에 구제역과 AI 조류 인플루엔자 예방에 총력 대처하는 보은방역당국에 위로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항상 미리 예방하기 보다는 사후약방문처럼 일이 터지면 야단법석을 떠는 게 보통인데, 우리 보은은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다.

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춥고 눈도 많았다. 언제 눈을 치웠는지 모르지만 항상 잘 치워진 눈길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극성을 부리던 때에도 우리 보은은 예방활동을 잘해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 '아름다운 청정 보은'이란 말이 우리 보은군민 모두의 땀과 노력으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

눈과 비가 많이 온다고 하면 피해가 있을 것은 뻔하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미리 대비하지 못해 일은 터지고, 피해를 입게 되면 국가에 보상을 요구한다. 호미로 막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미리 대비하면 막을 수 있는 피해였는데도 무조건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반면에 사전에 미리 예방하고 철저히 대책을 강구하여 피해가 없는 곳에는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는 지혜'를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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