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공부
늦깎이 공부
  • 편집부
  • 승인 2010.12.23 10:32
  • 호수 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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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 시인/마로 관기

영어선생님이 꿈이던 소녀가 있었다. 공부만 하면 꿈은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꿈만 꾸면 꿈은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10여리의 학교 길에 영어 단어를 쪽지에 적어 외우곤 했다. 소녀는 꿈이 있었기에.

가난이 문제였다. 가난은 그 소녀의 꿈을 무참히도 짓밟아 버렸다. 새록새록 자라던 꿈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밭을 매던 가난한 부모님에게 투정을 부렸다. 소녀도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고 싶다고.

못 이룬 꿈 때문에 늘 마음이 아팠다. 못 다한 공부 때문에 늘 가슴 한 쪽이 무너져 뻥 뚫려있었다. 뻥 뚫려있는 가슴을 메우려 책을 읽었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시를 쓰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면서 시를 썼고, 백일장을 갈 때마다 상을 타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인이 됐다.
그래, 그래 그냥 시나 쓰면서 열심히 살지 뭐, 영어 선생님보다 시인으로 사는 게 더 낫지 않나 뭐, 그렇게 자신을 위로 하면서.

아무리 자신을 위로해도 메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가슴 밑바닥까지 허허로운 목마름의 실체를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다. 나는,

언젠가 여행길에서 먼 대학교의 간판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 나는 저런 곳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왜 못해보고 죽어야 하나, 하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저 가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초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년이 된 나는 부끄러워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내가 나온 중학교에 졸업증명서를 떼러 갔다가 아픔처럼 적혀있는 나의 장래 희망을 보았다. 교육자라고 적혀있는.

처음엔 학교 가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부끄러워 할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못 배우고 한이 되어 죽는 거 보다 이제라도 배우겠다는데 그게 무슨 부끄러워 할 일인가 말이다.

어느 시간보다 국어 시간이 재미있다. 물론 영어 시간도 재미있다. 영어 선생님을 보면서 내가 만약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 보기도 한다.

이제 두 번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마치고 내년이면 2학년이 된다. 국어와 영어 점수가 높게 나온다. 하지만 이제 나의 꿈은 영어 선생님이 아니다. 이제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가면, 아동문학을 전공하여 동시도 쓰고 동화도 쓰는 아동문학가가 되고 싶다.

이제는 안다.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지는 것을, 먼 길을 돌아서, 돌아서 나는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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