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이의 외가 나라
정완이의 외가 나라
  • 편집부
  • 승인 2010.12.16 11:10
  • 호수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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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시인, 보은읍 강산리)

즉석 두부 집 세 살 박이 정완이는 시장골목에서 최고의 인기스타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가기위해 골목에 나타나면 서로 정완이를 부르며 한바탕 소란스럽다. 시장골목에서 자라는 탓인지 세 살 박이답지 않게 제법 능청을 떨어서 삶에 지친 골목에 비눗방울 같은 웃음을 하나 가득 날려 놓기도 한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 닿았었는지 유난히 나를 따라서 정이 더욱 애틋한 아이다.

정완이의 외가는 베트남에 있다. 자그만 체구의 그 애 엄마는 아직도 불편한 언어와 문화 관습의 환경 속에서도 야무지게 장사를 하며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궁금해 하며 가끔 문제를 물어보기에 들여다보았더니 외국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들이어서 안쓰러워 보였는데, 어느 날 보란 듯이 당당하게 합격을 했다.

오래전부터 베트남 전쟁과 중국 연구의 권위자인 이영희 선생의 저서 「베트남 전쟁」을 접하면서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외세의 간섭과 침략에 시달려온 아픔이 많은 역사가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나라다. 베트남 전쟁은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지휘한 스페인 내전과 함께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고 일컬어진다.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고대 베트남의 국가는 오랫동안 중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오다가, 근세에 와서는 100년 가까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왔다. 식민통치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투쟁해 왔는데, 1954년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승리하여 민족해방이 약속된 나라였다. 그러나 이 승리를 다지는 강화조약인 제네바 협정으로 오히려 국토와 국민이 남북으로 분단되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했는데, 그 선거에서 호치민의 승리가 확실한 것을 예상한 미국이 1956년에 프랑스 대신 다시 개입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제2차 베트남 전쟁은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루고 1975년 5월 1일 베트남의 극적인 승리로 끝났다.

제3세계의 약소민족이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을 이긴 이 승리는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조국과 민족만을 생각하며 일생을 바쳤던 '호치민'이라는 걸출한 지도자와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지배 하에서 배양되고 축적된 베트남 민족의 꺾일 줄 모르는 저항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복잡한 성격의 베트남 전쟁은 단순한 '공산주의 對 반공주의'의 이념적 대결이 아니라, 한 민족이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벌여야만했던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이해해야 옳을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우리나라도 이 전쟁에 참전하여 피차간에 많은 희생과 뼈아픈 상처를 남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우리가 총을 겨눠야 했던 그 나라의 젊은 여성들이 우리나라 국민이 되겠다고 반려들을 찾아 수억만 리 바다를 건너왔다. 그리운 가족들을 뒤로 하고 오직 잘 살아보겠다는 꿈을 안고 온 이들은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이웃이 되어 살아간다.

우리는 이들에게 미안함과 다소라도 빚을 갚는 마음으로 보살피고 이들의 꿈을 실현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알량한 동정심이나 선심에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따뜻한 인류애에서 비롯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꼭 크게 베푸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우 앞에서 제 육신 조금 성하다고 경망스럽게 뛰어서 굳이 앞질러 가지 않으려는 작은 배려가 바로 사랑의 실천 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서툴고 문화와 관습이 조금 다른데 대한 편견을 버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작은 마음, 그것이 그들을 돕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이제 오후 5시가 되면 어린이 집에서 정완이가 돌아와 내 가슴에 와락 안길 것이다.
이 녀석이 어서 자라서 함께 손잡고, 디엔 비엔 푸 전적지와 구치터널 등 치열하고 처절했던 베트남 역사의 현장들을 꼭 한번 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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