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 편집부
  • 승인 2010.11.25 09:32
  • 호수 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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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시인/마로관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지원위원회로부터 나의 아버지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나의 아버지,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평생을 진통제로 사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너무 가슴이 아프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일본에서 노무자로 일을 할 때였다고 한다. 일본 관리는 한국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너무 많은 일을 시키고,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보다 기운이 세셨던 아버지는 그 관리에게 '너는 왜 일은 안하면서 우리만 시키냐'고 대들었고, 시비가 붙어서 그 관리를 때렸다고 한다. 얼마 후에 일본 경찰 여러 명이 달려왔고, 아버지를 끌고 가서는 모진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전기 고문이 제일 힘들었다고.

그렇게 모진 고문을 해서는 한국에 오는 배에다가 아버지를 실려 보냈고, 한국에 와서도 6개월 동안 미음만 드시고 누워만 지내다가 겨우 깨어났다고 한다.

그 후유증 때문인지 우리 집엔 늘 진통제가 있어야 했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몸이 쑤셔서 고통스러울 때면 진통제를 드시곤 했다. 우리 앞에서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밤에는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평생을 진통제로 사셔서 그런지 돌아가시기 전에는 식도가 막혀서 밥은 드시지도 못하고 우유나 물을 조금씩 넘기시곤 했다.

그렇게 몸이 아프면 매사에 짜증이 나게 마련인데, 아버지는 늘 인자한 모습이었다. 동네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자식사랑이 남달랐던 분이다. 특히 내가 받은 사랑은 어떻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런지 좋은 일이 있을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아버지가 생각난다.

이렇게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면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곤 했다. 방이 식어갈 무렵 뒤척이다가, 아버지의 쿨럭이는 기침소리를 들으며 등이 따듯해지면, 아버지의 가없는 사랑을 생각하며 잠속으로 빠져들 곤 했다.

엄마는 따듯해진 부엌에서 아침밥을 준비했을 것이며, 우린 따듯한 물로 세수를 하곤 했다. 물을 데워 외양간의 소에게도 따듯한 물과 함께 소여물을 주었을 것이다.

긴 겨울밤이면 마실꾼들에게 장화홍련전이라든가 홍길동전 같은 옛날 이야기책을 구성지게 읽어 주시던 나의 아버지, 그 구성진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겨울밤이다.

약삭빠르게 살기보다 늘 손해난 듯,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시며 사셨던 나의 아버지, 우리에게 재산은 물려주지 않았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유산으로 물려 주셨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그런 아버지를 닮아서 이 험한 세상을 어눌하게 산다. 그래서 그런지 넉넉하게 사는 형제는 없지만 마음만은 다 부자로 산다.

평생을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속에서 사셨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늘 내 곁에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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