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화로
아버지의 화로
  • 편집부
  • 승인 2010.11.18 09:39
  • 호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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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진(보은읍 강산리/상업)

세월의 흐름은 꼭 달력으로만 알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11월이 되자 길가 채소 난전에 배추 더미가 수북이 쌓이고 연탄을 실은 짐차들도 분주해 보인다. 거리에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저도 모르게 빨라지고 이내 종종걸음이 되면서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내 어린 날 시골에도 이때쯤이면 타작마당이 거의 끝나고 지붕에 이엉 얹을 일이 기중 큰일 이었다. 품앗이 로 나온 마을 어른들은 아침 일찍부터 마당가 여기저기에 짚단을 쌓아놓고 종일 이엉을 엮었다. 부엌에서는 다른 날보다 구수한 냄새가 무럭무럭 풍기고 어린것들은 멋도 모르고 마냥 좋기만 했다. 마지막 용마름을 덮고 싸리비로 곱게 쓸어내린 후 튼튼한 새끼줄로 그물처럼 엮어 맨 새 지붕이 저녁노을 속에 퍽 고와보였다.

겨울날 준비로 또한 큰일이 김장 이었다. 당숙들과 함께 이룬 살림살이여서 여간한 량의 김장이 아니었다. 텃밭을 거의 차지했던 그 많은 배추들이 하루 종일 두레박 샘가에서 소금에 절여지고, 이튿날에는 푸짐한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져 뒤꼍 깊은 광속에 갈무리 되곤했다. 아버지와 당숙들이 져 나른 장작이 뒤란 처마 밑에 넉넉히 쌓이면 이젠 겨울이 와도 좋았다.

시골에서도 이제야 바빴던 일손을 놓고 한겨울 동안 농한(農閑)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때 집이 번듯하고 살림에 여유가 있는 몇몇 집에서는 단골무당을 청하여 안택(安宅)굿을 했다. 몇 일전부터 골목과 마당을 정갈하게 쓸고 고운 황토 흙도 뿌렸다. 왼쪽으로 비벼 꼰 새끼줄에 백설기처럼 하얀 문종이를 오려서 꽂은 금줄이 사립문 양쪽 기둥 사이에 쳐졌다. 부정 타는 것들을 막기 위한 것 인줄 다들 알아서 굿이 끝날 때까지 출입을 삼가며 서로 조심해 주었다.

굿을 안 하는 집들은 형편껏 갈 떡을 해서 돌렸다. 한해의 무사안녕에 감사하고 추수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나누는 조촐하나마 아름다운 행사였다. 시룻번이 고들고들 마르고 김이  한참 오르고 나면 시루를 엎어 쏟아놓고 켜켜로 잘 익을 떡을 잘랐다. 제일 먼저 조왕신을 모신 부엌의 부뚜막에 한 접시 올리고 장독대며 광에도 차례로 한 접시씩 올렸는데, 그 어느 귀신도 감히 감응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그 정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기 전에 이웃들에게 먼저 떡을 돌리는 것이 순서였다. 맨 꼭대기 집이나 건너뜸에 고샅이 으슥한 길은 으레 형들의 차지였다. 어린 것들은 길 하나 건너 가까운 이웃집에나 떡 접시를 돌리게 마련인데, 그래도 그게 그렇게 장하고 스스로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접시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저녁에 먹던 고구마라도 몇 개 담아 보내는 인심이었다. 바로 이웃에 있는 집은 담장 너머로 떡 그릇이 오갔다. 무엇 하나라도 서로 나누고자 했던 옛날 시골 정서의 상징적 이미지가 이것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싶다. 용마름을 새로 해 얹은 담장 너머로 오가던 그 갈 떡 그릇의 정겨운 풍경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계절이 점점 깊어지고 눈발 언뜻언뜻 날리는 저녁 무렵이면 부엌에서는 솥전에 밥물이 넘치며 뜸이 들어갔다. 어머니가 밥솥 아궁에 타던 잉걸불을 국솥 아궁이로 물리실 때쯤 아버지는 여물냄새 무럭무럭 김이 서리는 쇠죽을 푸시고 난 후, 이글거리는 불덩이 들을 무쇠화로에 가득 담으셨다. 재를 한 삽 덮고는 곱게 다독거려서 두리반에 차려진 저녁 밥상과 함께 안방으로 들여왔다. 식구들의 온기와 그 화로의 훈훈한 기운으로 문풍지를 울리는 겨울바람이 오히려 평화롭게만 들리던 한 때가 있었다.

큰집 뒤란 밤나무 고목에서 밤 깊도록 부엉이가 울고, 어머니는 침침한 호롱불 아래서 어린것들의 해진 양말을 기우셨다. 그러면 우리는 동네 사랑방에 마실가신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올망졸망 화롯가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묻었다. 밤참으로 배를 불린 우리는 밤이 깊도록 이불 위에 뒤엉켜 뒹굴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다. 아침 창호에 비친 햇살에 놀라 일어나 화로를 헤집으면 그때까지도 깜박거리는 불씨들이 남아있었다. 

오늘 날 이 춥고 쓸쓸한 날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내 가슴속에 남아서 깜박거리는 그 때 아버지의 화로 속 그 불씨 때문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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