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산다는 건
부부로 산다는 건
  • 편집부
  • 승인 2010.10.28 08:50
  • 호수 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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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시인,마로관기)

얼마 전 행복전도사인 작가겸 방송인인 최윤희씨 부부가 동반자살을 했다. 그 뉴스를 접하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을까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픈 아내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동반 자살을 택한 남편은 얼마나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사람일까, 잠시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내 남편은 과연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

지인들과 만난 여담자리에서 옛날엔 마누라가 죽으면 남편이 화장실가서 웃었는데, 요즘은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화장실가서 웃는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성격도 다른 남남이 만나 부부로 산다는 건 너무도 많은 배려와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참고 참아도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그덕 소리가 난다. 큰소리치며 싸우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도 주고 정말 못 살 것 같아 등을 돌리고 잠을 자기도 하며, 높은 산을 오르듯 힘겹게 인생의 산을 오른다.

언젠가 문학모임에서 오대산을 간 적이 있다. 그 산을 오르다가 문득 시가 생각났다. 그 졸시를 옮겨 본다.

 

산을 오르며
산을 오를 때마다 나는
실어증 환가가 된다
모든 말을 버리고 나면
오롯이 열리는 귀
내 생의 한 부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살아있다는 걸
말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솔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잎새들
몸 부딪는 소리
세찬 바람이 불 때는
큰소리 쳐가며 살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몸을 부비며
살갑게 살아온 날이 더 많았어
산을 오르고서야
비로소 내려다보이는 걸어온 길
내 뒤의 다른 사람들도 힘겹게 오르는 것이 보인다
힘들게 오를 때는
나만 힘든 길인 줄 알았는데

그랬다. 산을 오르면서 나는 깊이 깨달았다. 나만 불행한 것 같고, 만날 싸움만 하는 것 같고,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았는데, 말없이 산을 오르며 생각하니 싸운 날 보다는 살갑게 살을 맞대고 산 날이 더 많았다. 나만 힘들게 사는 줄 알았는데 산을 오르고 내려다보니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산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무 많은 날들을 참고 견디며 살았다. 1년만 더 참자, 1년만, 그게 10년이 되고, 그게 30년이 넘었다. 이제 톱니바퀴는 낡고 낡아 가끔 삐그덕 거린다. 이제 참고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체념도 하고 가끔은 서로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힘들게 오른 산을 조금씩 조금씩 내려가야 한다. 어떤 게 정답인지는 알 수가 없다. 참고 견디며 맞추려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지, 아님 맞지 않으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쉽게 각자의 길을 가야하는지.

맞지 않는 톱니바퀴지만 힘들게 굴리며 살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맞지 않는 톱니바퀴도 조금씩 맞추어지며 그런대로 잘 굴러 간다. 가끔 삐그덕 소리가 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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