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즐거움
책 읽는 즐거움
  • 편집부
  • 승인 2010.09.30 09:31
  • 호수 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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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순(시인/마로관기)

가을밤

누워서,
귀뚜라미가 밤을 켜는 소리를 듣는다
귀뚜르르 ··· ···
귀뚜르르 ··· ···
저 가는 톱으로는
밤이 갈라질 것 같지 않아
얼른 나는 등을 켠다

쩍, 벌어지는
밤의 껍질

흥부의 박속처럼 빛나는
환한 밤의 속
나는 둥그런 속에 들어앉아
보석 알갱이를 줍는다

내 속에 들어와서
빛나는
보석 같은 글자들

 

나의 졸시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이제 밤에는 서늘하기까지 하다. 진짜 가을밤이다. 독서하기에 좋은.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여름과 싸운 것이 아쉬워 요즘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시집도 읽고 수필집도 읽고 때로는 고전을 읽고 동시집도, 동화책도 읽는다.

농사일 시작하고 제일 아쉬운 건 낮에 책 읽을 시간을 빼앗긴 것이다. 책을 앉아서도 읽다가 지겨우면 엎드려도 읽고 그것도 싫증나면 누워서도 읽고 그것도 지겨우면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하면서 게으르게 맘껏 즐겼던 낮 동안 나만의 시간을 농사일에 빼앗긴 것이 제일 아쉽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나도 가끔 컴퓨터 화면으로 글을 읽어보지만 종이책을 읽는 그 깊은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전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 수입의 얼마를 잘라 책을 사곤 했다. 인터넷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을 주문해놓고 그것이 오기를 기다리는 작은 설렘, 나는 연인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설렘을 즐기기도 했다.  이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누렸던 그 행복감을 가끔씩 누려보곤 한다. 농사일이 바쁘기 때문이다. 가끔 농사일 하자고 꼬드긴 남편에게 묻는다. 아니 따진다.

"자기 하루 종일 책보라면 책 볼 수 있어? 글 쓸 수 있어?"
그럼 대답을 못 한다. 그래도 농사일하면서 그걸로 시도 썼으니 농사로 얻은 소득보다 나는 그것이 더 좋다.

가을밤, 내가 책을 읽으면 창밖에선 귀뚜라미도 소리 내어 책을 읽곤 한다. 나는 그 녀석들의 책 읽는 소리를 방해하지 않으려 눈으로만 읽는다. 아니 책속에 들어있는 보석 알갱이를 줍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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