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는 보은 땅을 구른다 ②
역사의 수레바퀴는 보은 땅을 구른다 ②
  • 편집부
  • 승인 2018.09.06 08:37
  • 호수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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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어암리 출신 글·그림 작가인 이주용 작가가 임진왜란 당시 수리티 전투를 승리로 이끈 보은현감이자 의병장 조헌 선생의 의로운 삶과 보은이 동학의 고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을 '역사의 수레바퀴는 보은 땅을 구른다' 라는 글에 풀어냈다. 본보는 4회에 걸쳐 이주용 작가의 글을 게재할 계획이다. (편집자 주)

1592년 임진년!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이 조선을 대대적으로 침공해 들어온 해이다. 개국 후 200년 동안 태평세월을 구가하며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고 내부에서만 티격태격해 온 조선은 그 후 7년 동안 호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 때 보은 땅에는 조헌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임진왜란 10여년 전에 보은현감을 자청해 이 땅에 온 조헌은 현감을 그만둔 후에도 보은 땅을 떠나지 않았다. 수한면 장선리 산 너머 밤티라는 마을에 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때를 기다렸다. 그곳은 현재 용곡리로 불리는 옥천 땅이다. 조헌은 율곡 이이의 수제자였다. "나는 율곡선생의 후예니라" 그래서 호(號)도 후율(後栗)이라 했다. 지금 사람들은 그가 살던 뒷산 중봉(中峰)이라는 호를 더 많이 부르고 있지만 조헌이 율곡을 흠모했던 정성은 대단했다. 오죽하면 밤티, 그것도 크고 둥근 밤이라는 뜻의 도래밤티 마을, 즉 도율리(都栗里)로 들어가 살았겠는가?

조헌이 스승 율곡 이이를 본받고자 했던 것은 이이의 '백성사랑' 정신이었다. 율곡은 인물이 많기로 유명한 선조대에서도 군계일학의 뛰어난 수재이자 탕탕평평한 대도를 펼치는 대 정치가였다. 틈만 나면 선조에게 백성사랑을 위한 제도개선과 시행을 강력하게 아뢰었다. 연산군 이래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전하, 제발 경장! 경장하소서!"를 외쳤다.

경장(更張)은 서경에 나오는 말로 율곡은 개혁(改革)이라는 위험한 용어 대신 이 말을 썼다. 왕조시대에 개혁은 역성혁명(易姓革命 : 왕조가 바뀌는 일)까지 연장되는 불온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선조가 정치를 잘 해보겠다며 인물들을 잘 뽑아서였기 때문일까? 한정된 벼슬자리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보니 '패거리를 짓고 이익을 다투는' 붕당의 조짐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경장'만이 생의 목표인 율곡은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49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스승 율곡을 잃은 조헌은 슬픔을 딛고 백성을 위한 정치에 매진했다.

조헌의 생의 목표 역시 율곡을 닮아 '백성사랑'과 '의(義)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 당파싸움에 골몰해 외부의 검은 기운이 몰려오는 것도 모르고 권력다툼만 하는 다른 관료들과 달리 조헌은 일본의 침략의 의도를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로부터 초래될 백성의 고통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헌은 왜 이 땅 보은현감을 자청해 왔을까?

표면적으로는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외직을 원했다고 하나 그는 보은이라는 지정학적인 땅을 고른 것이었다. 거기다 '후율'로서 밤티에 산다고 했으나 그가 사는 골짜기 끝으로 수리티라는 큰 고개가 늘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1592년 봄, 임진년에 왜의 대군이 이 땅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부터 왜의 침공을 홀로 외치며 경고해 왔던 조헌에게 다들 감탄할 틈도 없이 선조는 의주로 재빠르게 내빼고 허약한 관군은 옛날 말로 골패짝 쓰러지듯 무너지며 패산(敗散)을 거듭했다.

조헌은 보은과 옥천의 지사들(주로 제자들)을 끌어모아 의병을 조직, 수리티로 올라가 진을 쳤다. 승승장구, 전쟁으로 지새운 왜군들은 거칠 것 없는 진군을 하던 중 임진왜란 처음으로 보은 수리티라는 곳에서 갑자기 막혀버렸다. 험준한 고갯길 위에서 쏟아지는 돌과 화살과 잿가루를 날리며 공격하는 의병들의 기세에 왜군들은 끝내 수리티에서 후퇴해 고석리, 미원으로 돌아서 청주성으로 향했다. 이것이 임진왜란 최초의 승리! 바로 보은의 수리티고개 전투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주용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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