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씨앗이 아니라
단지 씨앗이 아니라
  • 편집부
  • 승인 2018.08.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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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교육의 좋은 예시로 다루어집니다. 씨앗은 작고 딱딱하며 모양이 동글거나 길쭉하다는 정도로만 관찰되곤 합니다. 하지만 땅에 심어지고 잘 가꾸어진 그것은 싹이 나고 잎사귀가 달리며 꽃이 피어나고 열매도 맺힙니다. 이런 씨앗을 통해 적어도 두 가지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씨앗조차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에 품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할까요. 훨씬 어마어마한, 아마도 각자의 미래에 대한 소질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각자에게 있고 그것은 소질의 발현을 통해 이뤄지며, 다양한 일들과 인연들이 이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겪는 경이로운 일, 어떤 인연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배움에의 몰입, 특정의 것에 대한 지속적인 흥미, 여러 인생의 전환점 등을 추후 뒤돌아본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신호들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고찰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은 본인에게도 그리고 세계에게도 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두에게 일관된 인간상이라는 틀은 그릇된 구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은 공산품과 같이 공장의 틀에 맞춰 동일한 목적으로 제작되는 물건일 수 없는 것이고, 부모와 학교 등 교육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신의 소질을 찾아가는 길을 동반하며 조력하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정해줄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교육자가 알고 지켜야 할 것이 충분히 많습니다. 둘째는, 보이고 만져지며 들리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에 만족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 씨앗을 단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보고 만져보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을 느낄 수 있게끔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씨앗의 안에는 훗날의 식물이 될 생명력이 깃들어 있기에 이를 마음으로, 판타지로 생생하게 파악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교사 임용이 된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 정작 교사양성기관에서 이런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다분히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최근의 외모지상주의 또한 물질주의적이죠. 외면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각종 시각적 자극에 대한 탐닉이 내면의 씨앗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드는 듯합니다. 물질주의는 본질을 다루지 않으니까요.

강환욱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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