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부천 공동육아협동조합 산어린이집
⑥ 부천 공동육아협동조합 산어린이집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8.08.16 09:22
  • 호수 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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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진정한 공동육아의 산실

우리나라 공동육아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경기 부천시의 공동육아협동조합 '산어린이집(이하 산집)'을 방문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것은 벽면 가득히, 어린이집 공간마다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 작품들이다. 어린 아이들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작품마다 자연의 향기가 듬뿍 담겨 있다. 산집 아이들에게는 뭔가 특별함이 있다.

#자연과 함께 성장하다

'흐르다'라는 말을 유아들에게 설명할 때 보통은 '물이 흐르다', 좀더 성의있게 설명하면 '시냇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다' 정도일 게다.

그러나 산집은 산속에 흐르는 작은 도랑에 발을 담근다. 발을 간지럽히는 물결과 시원하게 몸을 부딪치는 바람,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 말이 아닌 아이들은 오감으로 흐르다라는 말을 배운다. '높다'는 나무에 올라서서 느끼는 짜릿함과 무서움 등을 다양하게 느끼며, '낮다'는 땅을 밟은 안정감, 주변보다 낮은 것을 몸으로 배운다.

함박눈이 내리던 어느날, 여섯 살 아이는 내리는 눈을 잡으려다 번번히 놓쳤다. 결국 잡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이 녹는 모습을 보고 '눈 너는 죽었다'라는 시를 지었다. 이는 김용택 시인의 '콩 너는 죽었다'라는 동시를 패러디한 것으로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감수성이 드러난 시였다.

그림책에서 높은 아파트와 낮은 주택을 비교하며 단순한 지식을 습득하는 우리 아이들과 비교되는 산집만의 저력이다.

산집 아이들은 산과 함께 성장한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빗방울을 소리를 들으며 고인 물웅덩이를 놀잇감 삼고, 눈이 오면 온 세상은 아이들 놀이터가 된다. 하루도 거름없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산놀이는 아이들의 훌륭한 배움터이자 곳곳이 보물창고이다.

성주골 작은 산의 바위와 나무, 골짜기마다 아이들이 붙인 이름이 있다.

"처음 산집을 다닌 아이들이 붙인 이름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아이들이 소중한 보물을 간직하듯 새로운 장소와 나무, 돌을 발견할 때마다 이름을 지어주죠"

'노루귀꽃, 진달래 개미허리, 공룡바위...' 아이들이 산책갈 때마다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거나 예쁜꽃을 보며 붙인 이름들이다.

"어느 한날 공룡바위 근처를 지나다가 바위틈에 껴서 오도가도 못하는 사슴벌레를 발견했어요" 아이들은 살려줘야하는지 그대로 둬야 하는지 토론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이 임박해 그대로 두고 산집으로 돌아왔다.

"한 아이가 집에 돌아가 아빠를 졸라 캄캄한 밤에 다시 공룡바위에 갔다고 해요" 없어진 사슴벌레를 확인한 후 아빠는 '스스로 잘 빠져나와 숲속에서 건강하게 살 것'이란 설명으로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었다. 산집에서 이런 토론문화는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이다.

"세시풍속에 따른 민속놀이는 물론, 모내기와 상추, 토마토, 감자 등을  직접 기르기도 하죠" 뿐만 아니다. 진달래화전과 같은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와 농사지어 얻은 배추로 김장담그기, 매실청담기 등은 아이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이다.

산나들이를 다녀온 아이들은 주말 엄마, 아빠와 함께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장소를 소개하며 가족나들이로 이어지곤 한다.

"이렇게 산과 들 나들이를 몇 년씩 해온 아이들의 체력은 상상을 초월해요" 부천 성주골에 있는 산을 넘어 인천대공원까지 아이들이 종주한다.

"지난해에는 6살반 아이들이 넘었는데, 올해는 5살 아이들도 산을 넘었어요"

#그들에게 쉬운 일은 결코 없었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인 산집은 교사들은 교육활동만 담당한다. 운영은 학부모 조합원이 전적으로 도맡아 한다. 학부모들은 재정부터 홍보, 부모교육, 각종 행사 등을 역할을 나눠 전담한다. 때문에 어린이집에서만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이웃까지 모든 교육활동이 확대된다.

주1회 아빠들은 아이들의 교육공간인 산집을 청소한다. 또한 텃밭가꾸는 데에 밭고랑을 일구고 모내기할 논을 정비하는 것도 아빠들의 몫이다.

"아빠들의 교육활동 참여는 중요하죠. 또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에어컨을 설치하는 데에 4년, 공기청정기는 2년이란 시간이 걸렸죠" 날이 점점 더워지고 미세먼지 걱정에 에어컨과 청정기를 설치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이들은 달랐다.

생태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이들이 환경오염을 가중시키는 전자제품을 여과없이 사용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와 전자제품의 장단점 등을 공부하며 끊임없는 토론이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좁혀가고 존중과 배려, 협동하는 생활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이제는 몸에 배어 생활화 돼 있다.

"산집은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부모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은 친구와 소통하는 문화를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 속에서 배운다.

#산집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가 형성되다

20년의 역사를 지닌 산집은 부천 성주골의 마을공동체 형성의 구심점으로 성장했다.

"산집을 졸업한 아이들이 생태교육을 계속하고 싶어서 산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설립하게 됐죠" 이후 산방과후학교를 열어 일반학교에 들어간 아이들도 생태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교육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또 협동조합 카페가 마을에 생기고, 산집 학부모 여럿이 함께 공동주택을 만드는 사업도 확대되고 있다. 소행주(소통이 있는 행복한 공동주택)라는 다세대 주택을 지어 옥상정원과 마당을 확보해 아이들이 충분히 뛰어놀 수 있도록 했으며, 공동창고를 만들어 효율적 공간활용, 층간소움 걱정없이 마음껏 뛰어놀기, 엄마, 아빠 없이도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는 공동육아, 친구들이 늘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생겼다.

또 엄마모임, 아빠모임, 가족모임, 독서모임, 배드민턴, 축구 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이 구성돼 있어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 이들에게는 익숙하다.

"산집에 입학할 때 어떤 부모는 생태교육이 좋아서, 어떤 부모는 신뢰가는 교사진, 먹거리 등 각자 자기만의 이유로 모였죠" 그러나 아이가 졸업할 때 부모들은 아이보다 훨씬 성장해있다.

"아이들에게 산집은 어릴 적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고향이죠" 뿐만 아이다. 성주골 아이들은 마을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돌봄 속에서 소중한 꿈을 일궈가고 있다.

김선봉·김경순·박옥길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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