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의 생명과 건강도 지키는 시스템 간절..."
"소방관의 생명과 건강도 지키는 시스템 간절..."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8.06.27 23:59
  • 호수 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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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환 센터장, 정년퇴임을 맞으며...

속리산119안전센터(센터장 정창환)

소방관을 천직으로 여기며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평생을 살아온 이가 있다. 속리산 119안전센터 정창환 센터장. 회인면 쌍암리가 고향인 그는 1986년 소방관이 돼 32년간 근무를 하고 6월 28일 정년퇴임식을 가졌다.

#구조대원으로의 활약

1986년 28살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정창환 센터장은 소방관이 됐다. 당시에는 소방관은 불을 끄는 것이 주업무였다. 그러다 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도 외국처럼 구조대라는 파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충북은 1990년에 첫출발을 했는데 그때 그는 구조대원으로 응시해 당당히 합격해 충북의 첫 구조대원으로 활동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죠? 젊은 혈기에 그랬죠" 그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2만2천900볼트 전선에 페러그라이딩을 타던 여성이 전선에 휘감긴 것. 119 긴급출동을 받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전기를 차단할 수 있는 한전은 도착하지 않았다.

"전기에 대한 지식이 없던 상태에서 여성은 겁에 질려있고 언제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죠" 그는 두려움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느새 그는 전신주를 타고 여성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30여년의 소방관 생활동안 그의 활약을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지만 'KBS 긴급출동 119'에만 3번 출연이라는 말에 그의 활약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금은 3교대 근무지만 당시에는 2교대 근무였죠" 2교대 근무는 하루건너 하루 밤샘일을 한다는 의미다. 근무가 끝나고 집에 가면 남편, 아빠는 늘 자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어느새 다 컸어요. 아내와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구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그가 힘을 쏟는 동안 그의 건강과 가족은 뒷전이 돼버렸다.

"40대 중반부터 서서히 건강 적신호가 느껴지던군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죽은 사람과 대면할 일이 많은, 특히 어린 아이의 죽음 앞에 미어지는 마음이 몇날을 가기에... "젊어서는 몰랐는데 쌓이고 쌓이다보니..." 지금도 그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소방관은 늘려도 늘려도 부족한 상황이죠" 특히 충북은 정원을 50%밖에 채우지 못한 현실이다. 제천참사 당시 화재장비를 담당하는 소방관 외에 화재진압대원이 2명이라고 하니... "서울 90%이상, 경기도 87~88%. 사람을 구하는 일에 경제성을 논해서는 안돼죠" 그는 이대로 소방시스템이 작동해서는 안됨을 강조했다.

"후배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소방관이 됐는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한 만큼 자신의 생명과 건강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됐으면 하는 간절함입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은군 소방서가 생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옥천과 영동에는 소방서가 있지만 보은은 119안전센터만 있었다.

"전 김인수 도의원과 함께 보은소방서를 만들기 위해 먼저 속리산센터부터 문화재보호, 보은읍과 원거리 등의 이유로 먼저 센터를 만든 후에 보은군소방서도 설립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또한 심폐소생술 보급과 지역사회의 안전예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몸으로 배운 것은 위급상황에서 반드시 활용할 수 있지만 머리로 배운 것은 당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인데, 이에 대한 인력을 투자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 돈의 가치를 따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고 강조했다.

"119의 업무는 점점 방대해지고 있습니다. 후배들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긍심을 갖고 일하길 바라며, 고향에서 정년을 맞이하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라며 그는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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