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걸이
옷걸이
  • 편집부
  • 승인 2018.05.03 09:34
  • 호수 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영철(아동문학가)

모든 것이 흔한 세상이다. 다가구 주택에서 생활하다 보면 음식물 쓰레기통에 먹지 않은 빵이며 과자가 자주 눈에 띈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생각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며칠 전에는 개봉하지 않은 생일 케이크가 그대로 버려져 있는 것을 보고 아내와 내가 크게 개탄한 적이 있다.

흔한 것이 어디 음식물뿐이겠는가? 이사 가면서 버린 가구며, 가전제품도 조금만 손을 보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서 길을 가다 버린 물건이 눈에 띄면 가져다 수리하여 쓰는 것이 우리 집에는 여러 개 있다. 거실에 있는 벽시계, 어항을 놓은 탁자, 첼로를 연주할 때 앉는 의자 등이 다 재활용품이다. 처음에는 남의 눈을 의식한 아내는 그런 나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의 손에도 재활용품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어 서로 보고 웃는다. 이래서 '부부는 일심동체요. 서로 닮는다.'고 하는가 보다.

아내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세월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오리털 코트를 입고 다닌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 사이 노란 카디건 하나 걸치고 다닌다. 세월의 흐름이 어디 옷뿐인가.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 그리고 홀쭉해지는 몸매, 희미해지는 기억력 등도 세월의 흔적들이다. 노력도 했지만,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 전에 입던 옷들이 지금은 헐렁하여 꼭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꼴이 되었다. 양복 몇 벌은 수선 집에 가서 줄여 보았지만 폼이 제대로 안 나 결국, 남을 주기도 하고 교회 바자회에 내놓기도 했다.

입을 옷이 변변치 않음을 안 아들과 딸은 계절이 바뀌면 양복이며 다양한 옷들을 사다 준다. 아이들한테는 '이제 결혼을 했으니 돈을 아껴야지,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고 야단을 치지만 아버지로서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벚꽃이 지자 한낮에는 제법 덥다. 봄옷을 찾다가 봄 양복을 세탁소에 맡겨둔 생각이 났다. 다음 날 세탁소를 찾아가니 주인장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가 나를 반기는 것은 내가 이사를 하였지만 일부러 세탁소를 찾아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이고, 또 하나는 사용하던 옷걸이를 모아 두었다가 일 년에 한두 번씩 재활용품으로 세탁소에 반품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 일게다.

옷걸이를 창고에 두고 온 주인장은 바쁜 시간이 지났는지 커피 잔을 들고 나온다.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고맙다는 말씀도 못 했습니다."하며 커피잔을 내 앞에 놓는다. 나는 커피잔을 들고는 주인장과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 세탁소를 하면서 느꼈다는 주인장 이야기를 듣고는 많은 동감이 갔다.

"사실 우리는 옷걸이에 불과합니다. 어떨 때는 공직이라는 무거운 옷을 입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자연인으로서 간편한 복장을 걸치기도 합니다. 가끔 오시는 손님 중에는 자기가 옷걸이라는 생각을 안 하시고 날마다 자기는 특별한 옷을 입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하여 저의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맞는 말이다. 태어날 때 입는 배냇저고리부터 죽을 때 입는 수의까지 우리는 옷을 입는 옷걸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명예의 옷, 권력의 옷을 입었던 사람 중에는 늘 자기가 그 옷을 입고 있는 양 행동을 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혹 그 옷을 현재 입고 있다 해도 겸손해야 할 사람이 그 옷을 벗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가!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좋은 옷을 입은 후보자가 아닌 좋은 심성을 가진 후보자가 당선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