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 박상범 기자
  • 승인 2010.07.08 10:02
  • 호수 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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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학의 정책의제설정 이론에는 외부주도형, 내부주도형, 음모형의 모형이 있다.

이중 외부주도형은 사회문제 발생→사회적 쟁점→공중의제→정부의 공식의제 라는 정책의제설정과정을 거쳐 정부의 정책으로 나타난다. 정책의제설정까지 국민적 합의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만, 정책집행이 용이하고 국민의 순응도가 높아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내부주도형은 사회문제 발생→정부의 공식의제→사회적 이슈→공중의제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가 미리 해결책을 정해놓고 국민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정책의제설정은 손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발생시 국민의 반발로 인해 정책집행이 어렵고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이유로 사회가 다원화되고 평등한 선진국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자의 외부주도형에 의해 정책의제가 설정된다.

지난 7일 수한면 후평사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교차로를 통과하던 노부부가 교통사고로 인해 한분은 사망하고 한분은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보은경찰서가 자랑스러워했던 지난해 11월 9일부터 239일을 이어오던 교통사고 무사망이라는 대기록이 깨지는 사고였으며, 아울러 7월1일 전국 최초로 시행한 교차로 '점멸등 신호체계'의 운영에도 제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은경찰이 제시한 제도시행의 당위성에 상당부분 공감하며, 이 사고로 인해 곧바로 내일부터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성급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경찰의 제도시행을 결정하기 이전에 대한 아쉬움은 지적하고 싶다. 점멸등 신호체계 전환이라는 시책을 결정하기 전 군민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물어본 후 시행여부를 결정했어야 하며, 또한 주민들의 지적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종합적이고 확실한 대책을 세워놓고 시행했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다. 다시 말해 이번 점멸등 신호체계 시책은 사전에 주민들과 의사소통이 없이 경찰주도의 내부주도형 정책결정이라는 것이다. 인명피해라는 정책집행에 따른 부작용이 충분히 예견되었음에도 주민들과 사전 논의 및 합의단계를 거치는 외부주도형으로 하지 않고, 경찰에서 충분히 대책을 세웠으니 믿고 따라달라는 내부주도형으로 이 정책을 결정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따라서 지난 1주일간 발생한 교통사고가 군민들에게 알려지면서 반발수위가 높아지고 있으며, 경찰은 보완대책 마련으로 사회적 비용이 추가되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만일 공청회 등을 통해 군민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고 이해와 설득의 시간을 가졌다면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군민들의 시각이 지금처럼 부정적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과도기 단계이므로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새 정책집행으로 감수해야 할 것이 재산·경제적 피해라면 몰라도 인명피해는 그 어떤 당위성을 꼽더라도 지속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판단되는 가치가 바로 사람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점멸등 신호체계 하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경찰의 심사숙고가 있어야 할 것이며, 계속해서 시행할 경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대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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