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이장에서 동네 파수꾼으로
꼬마이장에서 동네 파수꾼으로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8.02.01 11:49
  • 호수 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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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한면 질신1리 채수호 이장
 

퇴비공장 반대 집회를 앞둔 수한면 질신리 주민들은 집회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1월 27일 질신1리 채수호 이장을 만났다.

#질신리 마을문 두드리는 업체들

"질신리는 '피난골'이라 불릴 정도로 산이 깊은 동네입니다" 산으로 둘러쌓인 질신리는 비가 오면 장화를 신지않고는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물이 차이는 곳이어서 '질궂이'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사방으로 도로가 나서 생활하기에 편리한 동네가 됐는데 불법적 퇴비공장이 들어와서 주민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깊은 골짜기 마을에서 교통이 편리한 동네로 변해 귀농·귀촌인구도 많이 늘었지만 퇴비공장으로 자연환경 파괴와 수질오염, 냄새 등으로 주민들은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작년에는 상주시민들이 반대해 쫓겨난 병원폐기물 공장이 질신리로 들어오려 했고, 골프장과 사설 공동묘지 등 끊임없이 질신리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마을 주민들과 인근 면민들이 힘을 합쳐 막아냈지만 고단한 세월이었다.

"현 퇴비공장의 불법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발품을 얼마나 팔았던지..." 밤낮이 따로 없을 정도로 쫓아다니며 모은 사진자료와 젊은사람들의 발빠른 대응이 맞물려 행정기관도 '나몰라라' 하던 문제를 주민들의 힘으로 증거를 찾아내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었다.

#꼬마이장(?) 채수호

선친이 계셨던 어렸을 적, 그의 집 사랑방은 늘 분주했다. 일을 마친 저녁이면 동네사람들이 모여 선친의 좋은 말씀도 듣고 동네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가 많았는데 그때부터 그는 동네 심부름꾼이었다. 이후 청년이 돼서는 반장을 맡고 군제대 이후에는 새마을지도자를 맡아 동네일에 앞장섰다.

"1984년 동네 어르신들이 저를 이장으로 선출했죠" 31세에 이장에 선출됐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이장 일은 안된다며 면사무소에서 반려했다.

"이듬해 다시 선출됐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면사무소로 찾아가 사정해서 승낙을 받았어요. 보은군 최연소 이장이 됐죠" 아버지와 같은 연배의 다른 동네 이장들 틈에서 그는 열심히 뛰어다녔다.

'꼬마이장'이 장화신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대견했는지 다른 동네 이장들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며 그와 함께 했는데, 그시절 배고픔을 나눴던 이장들은 모두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운명을 달리했다.

"동네의 문제가 하나씩 해결될 때마다 주민들이 떡과 막걸리로 고생했다며 정을 나눌 때 보람을 느끼죠" 30년 동안 동네일을 봤던 그는 이제는 젊은이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

부인 유우열씨 사이에 1남2녀를 기르며 바깥일로 바빴던 채 이장을 대신해 부인의 고생도 덩달아 이어졌다.

특히, 퇴비공장 문제로 그와 그의 부인에게까지 압력과 회유 등으로 힘든 나날이 이어졌고 부인 유씨는 병원 입엸퇴원을 수시로 하는 신세가 됐다.

"자연환경 파괴와 냄새로 주민들이 수년동안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사과와 피해보상은 커녕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동네를 지키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회는 계속됩니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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