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뒷모습
  • 편집부
  • 승인 2017.12.07 11:31
  • 호수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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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철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아내가 갑자기 나를 부른다. "여보,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고 나가세요. 뒤가 너무 구겨져서 보기 흉해요." "그래요? 거울을 보니 괜찮은 것 같아서 입었더니." "당신도 참, 거울은 앞모습만 보여주지 뒷모습까지 보여주지는 못하잖아요." "아, 맞아. 이럴 때 보면 나는 바보 같다니까."

가끔 내 딴에는 잘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면 아내는 가만히 듣고는 다른 의견을 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서운해서 똑 쏘아붙인다. "아니, 당신은 지금 누구 편이오? 잘했다고 손뼉은 못 칠망정 그렇게 고춧가루를 뿌려야 되겠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했다고 하는데."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화가 지나간 후 아내의 말을 곱씹어 보면 옳은 경우가 많다. 나의 면전에서 내 의견에 찬성하고 호응을 한 사람들은 단순히 나의 앞모습만 본 사람들이고, 아내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까지도 세심히 보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내는 나의 영원한 친구이자 반쪽이다.

대학교 안에 있는 은행에서 근무할 때이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놀란 얼굴로 나를 찾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금액이 통장에서 인출되었다며 안절부절못한다. 우선 학생을 진정시키고 통장을 살펴보았다. 전날에 돈이 인출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전표를 찾아보니 도장과 비밀번호 모두 일치하였다. 그러나 학생은 그 시간에는 수업 때문에 강의실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부득이 교수를 찾아가 확인까지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지점장에게 보고한 후 마지막 수단으로 학생과 함께 CCTV를 돌려보았다. 범인은 신고한 학생과 같은 방을 쓰는 친구였다. 신고한 학생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번만 더 보여 주세요. 제발, 제 친구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는 저에게는 가족과 같은 친구예요. 그리고 이 사실은 없던 일로 해 주세요. 제가 더는 문제 삼지 않겠어요."하며 울먹였다.  

그러나 나는 직원들과 회의를 한 결과 이 사실을 학교 측에 알리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이런 학생이 있다면 앞으로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기숙사를 방문하여 담당 선생님께 이번 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적절한 조치를 부탁했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 하였다. 아내는 듣고 있다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이야기 했다. "여보, 신고한 학생이 비밀로 해 달라고 했는데 굳이 학교에 알릴 필요가 있어요? 오죽하면 방친구의 통장에 손을 댔겠어요. 내 생각에는 그 학생 더는 학교를 다니지 못할 거예요. 나중엔 반거들충이가 되어 인생이 변할 수도 있고요. 그런 일은 좀 더 신중을 기했으면 해요. 때에 따라서는 벌보다 용서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는데…"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사감 선생이 은행 일을 보러 왔기에 그 학생에 관하여 물었다. "아, 그 학생 바로 자퇴했어요. 그리고 신고한 학생도 휴학 했고요. 학생의 말에 의하면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고 해요. 갑자기 아버지께서 큰 수술을 하셨는데 입원비가 없어서 고민 끝에 친구의 통장에 손을 댄 것 같아요. 학생이 많다 보니 별일이 다 있어요."하며 사감선생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거울을 통해 앞모습만 보고는 마치 모든 것을 본양 생각하고 판단했던 내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솔함으로 한 학생의 인생이 잘못되었음은 어떻게 하나 하는 죄책감에 그날은 하루 종일 창밖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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