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촌(暮村)
모촌(暮村)
  • 편집부
  • 승인 2017.11.09 11:13
  • 호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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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나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러붙던 밤, 지붕 밑 양주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바가지 뀌여들고 추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시인부락 1936-

모촌은 저물어가는 농촌, 즉 화자의 눈에 아프게 비친 식민지 조국의 농촌 현실은 이런 것이었다. 박 한 통을 양식으로 하고 그것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구걸을 떠나는 농민의 모습을 시인은 말없이 지켜본다. 그것은 지향없는 유랑걸식의 시작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유이민이 되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 그렇게 뿌리를 잃고 떠돌아야 하는 식민지치하 농민들의 삶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토지강점과 경제적 착취에서 시작된 기아와 빈궁이 그 당시 농민들의 삶이다. 「모촌」은 저물어가는 농촌이면서 기울고 있는 민족현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오장환의 작품 전반에는 인간을 위한 문학이라는 일관성 있는 흐름이 있다. 맞닥뜨린 현실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구조가 아니면 시인은 그것을 비판하였다. 식민지 근대도시에 대해 비판하는 작품을 썼으면, 주변부 되어 버린 고향과 피지배자인 고향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작품으로 형상화 했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지금까지 서정주, 유치환과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 불리어 왔다. 그러나 생명파 시인들과 시적 경향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은 인생의 토대인 식민지 현실, 생명이 발현되는 토대인 이 땅과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오장환문학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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