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군 경계는 대청호 물길 위에도 있더이다
보은군 경계는 대청호 물길 위에도 있더이다
  • 박상범 기자
  • 승인 2010.06.17 09:42
  • 호수 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따라 길따라 … 둘레산행 5구간 : 염티고개~벌전~법수리~국사봉~서탄리목~은운리 지경마을(총 24km)

올해 1월 산외면 대원리 활목재에서 시작한 제2차 보은군 둘레산행이 내북면과 회인면을 거쳐 회남면에 도달했다. 예전 같으면 390리 보은군계 중 배를 타는 구간이 없었겠지만, 1980년 대청호가 생기면서 회남면 구간 통과를 위해서 배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 구간이 돼버렸다.

보은사람들 신문과 보은속리산악회(회장 조진)가 함께 하는 6월 둘레산행은 녹음이 짙어가는 산속을 걷는 산행과 푸른 빛 대청호를 건너는 항해가 반복되어 둘레산행의 백미(白眉)를 맛보고 왔다.

지난 13일 실시된 5구간 둘레산행은 염티고개(회남면 남대문리)~버랏나루(청원군 문의면)~법수선착장(회남면 법수리)~국사봉~국사호선착장~서탄리목(회남면 서탄리)~방개나루(옥천군 군북면)~가산천하구(회남면 은운리)~언목~지경마을(회남면 은운리)까지 뱃길 13㎞, 산행 11㎞ 등 총 24㎞의 구간종주를 했다.

 

#시원한 월드컵 첫 승 이야기
아침 7시30분, 5구간 산행을 위해 보청천 하상주차장에 모인 사람은 모두 22명이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날씨지만, 어제 있었던 남아공월드컵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대0으로 기분 좋게 이긴 이야기로 모두들 즐겁기만 하다. “조직력이 좋아졌다. 모든 면에서 그리스를 압도했다. 박주영이 1골을 넣어 3대0이 됐으면 완벽한 경기였다" 출발과 함께 시작된 축구이야기는 끊이질 않고 계속된다.

6월 중순, 차창 밖은 온통 초록색뿐이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기 시작한 것이 열흘전 이야기이고, 논에는 모가 제법 푸른색을 띠며 자랐고 산과 들에는 녹음이 짙어가고 있다.

8시20분, 약 50분을 달려 버스는 출발지점인 염티고개(290m) 정상에 도착했다. '회남문의로'라고 적혀있는 길옆 이정표가 보은군 회남면과 청원군 문의면 경계임을 알려주고 있다.

고개 아래로 고려명장 최영 장군이 호점산성을 쌓을 때 만지장을 열었다는데서 유래된 만마루 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은 경주 김씨 후손들의 재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각자 몸을 풀고 출발준비를 한 후 정각 8시30분에 염티고개를 출발했다.

 

#대청호 위를 시원하게 가르다
390고지를 향해 첫 걸음을 뗐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산속은 후텁지근했다. 2007년 1차 군계종주 때 달아놓은 빛바랜 시그널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띤다. 한참을 걸어올라 390고지를 밟고 잠깐 숨을 돌린 뒤 버랏나루로 향했다. 5부능선 쯤 내려왔을까, 커다란 바위 밑에 토종꿀을 재배하는 꿀통이 2개가 놓여있다. 아무리 비가와도 비를 맞지 않을, 딱 꿀통이 있을 만한 장소이다.

9시30분, 첫 배를 타는 장소인 버랏나루에 도착했다. 나루 위쪽으로는 시내버스정류소와 똑같은 모습의 정류소가 있었다. 지금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지만, 그 옛날 배를 기다리는 주민들의 쉼터 노릇을 톡톡히 했으리라. 10분쯤 기다렸나, 일행의 항해(?)를 책임질 배 2척이 대청호 물살을 가르며 버랏나루로 들어온다. 보은군해병전우회 이덕희 재난구조대장과 회남면 자율어업회 양승진 선장이다. 11명씩 나누어 타고 목적지인 회남면 법수리로 떠났다.

골짜기를 약 300여m 빠져 나오자, 대청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대부분의 지역이 물에 잠기고 고지대만 일부 남아있는 회남면 매산리가 정면에 보이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자, 산수리와 법수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따금 집과 밭들이 보인다.

회남면 산수리와 법수리 쪽은 지형이 완만하여 바다갯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짐작컨대 수몰이전에는 밭이 꽤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 우측으로 보이는 문의면 후곡리는 깎아지는 절벽의 모습을 보여 수몰이전에도 고지대에 있던 산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0시20분, 버랏나루에서 약 5km 떨어진 대전광역시 동구 오동과 회남면 법수리의 경계에 두 대의 배가 무사히 도착했다.

 

#새끼 고라니를 만나다
배에서 내린 후 그늘 밑으로 이동해 약 10여분간 휴식을 취했다. 시원한 얼음물과 맥주로 목을 축이고, 10시30분에 210고지를 향해 출발했다.

출발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 앞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를 소지한 회원들은 카메라를 꺼내느라 부산을 떤다. 잠시 뒤 태어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뒤뚱뒤뚱 거리며 숲속으로 걸어간다. 사람을 처음 보아서인지 거부감 없이 도망도 가지 않고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엄청난 카메라의 셔터세례를 받고서야 자리를 떠나나 보다. "뭐든지 새끼는 다 이쁘고, 귀여워!", 누군가 한마디 한다.

210고지를 넘어 571번 지방도변에 도착해 약 40분간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했다. 12시 20분 점심식사 후 국사봉(319m)을 향하는 발걸음이 모두들 무겁다. "차라리 국사봉에 올라서 점심을 먹을 걸" 맛있게 먹을 때는 좋았는데, 후회를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더욱이 오르는 길도 무척이나 가파른 탓인지 모두들 말이 없이 조용히 걷기만 한다.

하지만 국사봉 정상에서 본 대청호의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571번 지방도를 사이에 두고 우측의 대전 동구 주촌동 마을은 마치 리아스식 해안을 연상케 하며 들쭉날쭉한 모습속에 전원마을이 여기저기 있었다. 좌측의 회남면 사탄리와 송포리의 모습도 마치 호수를 그린 한 폭의 산수화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모습이었다. 수몰된 마을의 전설을 품은 채.

 

#수몰의 아픔이 행정구역으로 남아
오후 1시30분 국사봉 아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대청호로 나오자, 좌측으로 어성리와 매산리를 잇는 453m 회남대교가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1978년 9월27일 착공해 1980년 7월30일 준공된 회남대교는 당시로는 드물게 기술과 자재 모두 국산으로 시공됐다.

배가 물살을 가르면서 달린다. 국사봉 정상에서 보았던 사탄리와 송포리가 눈앞에 들어온다. 회남면 대부분이 많게 적게 수몰되었지만, 사탄리는 대부분이 수몰되어 지도상에도 그 행정구역이 제대로 표시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사탄리에는 고려말 명장인 최영 장군과 관련된 말채나무 전설이 있다. 최영 장군이 말의 빠르기를 시험하기 위해 활을 쏜 후 말채찍을 갈겨 목표지점에 도착해보니, 이미 화살이 지나갔는지 화살이 보이지 않자, 말의 목을 치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이제야 화살이 목표지점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크게 탄식하고 말채찍을 땅에 묻었는데, 그대로 잎이 나고 자라 큰 것이 말채나무라는 것이다. 이 전설도, 말채나무도 모두 물속에 잠겨 흔적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현재 회남면에는 법정리가 거교·금곡·남대문·매산·법수·분저·사음·사탄·산수·서탄·송포·신곡·신추·어성·용호·은운·조곡·판장 등 모두 18개리가 있다. 이중 사탄·서탄·송포·어성리는 행정상 존재하고 살고 있는 주민들이 없으며, 매산리에는 1가구가 있어 인근 산수리 이장이 행정편의 제공하고 있고, 5가구가 살고 있는 용호리는 분저리 이장이 이장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배를 보내고 물길을 건너다
오후 1시50분 보은군 회남면 서탄리, 옥천군 군북면 대정리, 대전 동구 주촌동 3개의 행정구역이 맞대고 있는 서탄리목에 도착, 약 200m 높이의 산을 넘어 있는 방개나루로 향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파르고 길이 없었고 넝쿨이 무성해 1시간 넘게 고생을 했다. 오늘 반바지와 반팔 옷을 입은 것을 후회하게 된 구간이기도 하다. 넝쿨 때문에 계속 고개를 숙이고 걷자, 누군가 한마디 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수긍하면서 늘 머리를 숙이면서 살아야 돼" 이유야 어찌되었든, 옳은 말씀이다.

오후 3시 방개나루에서 3번째 배를 탔다. 목적지는 회남면 은운리와 안내면 담양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가산천하구이다. 20여분 배를 타고 가산천 하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내리는 곳을 회남면 쪽으로 내려야 하는데, 안내면 쪽으로 잘못 내렸다. 배는 이미 작별인사와 감사인사를 서로 전하고 떠난 후이다. 10m 정도의 여울을 건너던지, 아니면 가파른 산을 타고 길도 없는 안내면 쪽으로 약 2시간을 추가로 돌아야 한다.

모두들 난감한 표정으로 망설이고 있는데, 김기식 부등반대장이 등산화와 배낭을 벗어 머리위로 들고 폭 5m 정도의 여울로 망설임 없이 건넌다. 이어 최윤태 전 등반대장이 뒤따르면서 "산행이란 산도 넘고 물도 건너는 것이다. 젖은 옷은 1시간이면 다 마른다"고 격려한다. 다행이 물깊이가 허리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제야 모든 산악회원들이 물을 건널 채비를 한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핸드폰과 시계들을 벗어 배낭속으로 집어넣느라 분주하다. 그리고는 모두들 망설임없이 여울로 뛰어든다. 22명 모두 바지가 젖었어도 불평들이 없이 오히려 막판에 시원한 경험을 했다며 색다른 경험에 좋아들 한다. 하루 종일 힘든 산행을 함께 한 동지애가 느껴진다.

가산천하구를 거슬러 올라 회남면 은운리 언목을 거쳐 지경마을로 향했다. 은운교 바로 앞에서는 노랗게 익은 보리를 수확하느라 노부부가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 않고 부지런히 낫질을 하고 있다. "어르신, 쉬엄쉬엄 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조금을 더 걸어 오늘의 목적지 회남면 은운리 지경마을에 도착했다. 오후 4시40분, 5구간 회남면 종주를 마쳤다.

반바지와 반팔 셔츠를 입은 탓에 여기저기 상처는 나고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같이하는 분들이 있어 행복했고, 산과 호수로 이루어진 군계를 눈으로 몸으로 확인했다는 것에 뿌듯함이 느껴진다.  다만 대청호 담수로 인해 수몰되어 사람은 살지 않고 이름만 살아 남아있는 수몰지역을 바라보며, 고향을 등진 실향민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하루였다.

끝으로 하루 종일 3차례나 일행을 건네주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 보은군해병전우회 이덕희 재난구조대장과 회남면 자율어업회 양승진 선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