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 산다는 것
보은에 산다는 것
  • 편집부
  • 승인 2017.07.27 15:24
  • 호수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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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나뭇잎 사이를 가르며 들려온다. 뉴스에는 불볕, 찜통, 가마솥 등의 수식어를 붙여 한여름 더위를 표현한다. 밤이면 열대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리 밑이나 공원에 나가 더위를 식힌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작년보다 더 덥다는 올해 여름, 덥기는 덥다.

도시는 높은 건물들에 막혀 바람은 도시 외곽을 돌 뿐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 같다. 자동차로 인해 열기는 더한 듯하고 사람들은 양산이나 모자로 햇빛을 가리고 한 손에는 시원한 음료를 들고 목적지를 향해 가기도 한다. 도시는 그렇게 여름을 버티고 있는 듯하다.

시골이라 불리는 이곳의 여름 더위도 덥다. 고추밭에 울긋불긋 파라솔이 혼자 움직이는 건 바람 때문이 아니다. 고추를 따며 쪼그려 앉은 농부에게 햇볕을 가려줄 유일한 안식처다. 한 움큼의 고추를 따면 앞으로 한 걸음 전진, 고춧대는 쪼그려 앉은 농부를 숨긴 채 찔끔찔끔 파라솔은 움직인다. 고추를 따는 건 햇볕을 따는 거라던 옛말이 생각이 난다. 농부의 땀이 제대로 된 가치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래도 매미 소리를 들으며 둥구나무 아래 평상에 앉으면 바람은 나뭇잎만 흔드는 게 아니라 농부의 굵은 주름 사이로 시원한 속삭임을 주기도 한다. 시골이란 이런 곳이다. 농사를 짓고 잠시 한숨을 돌리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하고 열대야를 모른 곳, 도시 사람들은 낭만이 있다고 생각할 듯하다.

처음 보은에 내려와 맞이한 봄에 핀 벚꽃, 살구꽃. 푸릇하게 올라오는 들풀들. 한여름에 올라온 상사화를 보고 이런 게 시골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이구나 생각했다. 저녁에 마을의 돌담길을 산책하며 별 총총한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는 것 또한 낭만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은, 시골에 산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급히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소여리에서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보은터미널에서 청주터미널까지 그리고 서울에서 일을 보고 다시 돌아오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13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보은에서 서울로 가는 직행 버스는 왜 사라진 것일까?

영화를 보러 청주나 대전으로 나가야 하고, 전시회나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기려면 보은을 벗어나야 한다.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볼라치면 보은을 벗어나야 한다. 보은을 벗어나야만 즐길 것과 느낄 것이 많다는 것은 보은엔 없다는 것이다. 보은에 영화관을 짓는다, 도서관을 짓는다는 소식이 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 과정을 보면 씁쓸한 부분도 있다. 군민을 위해 짓는 것인지 군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는 어린아이에게 사탕 하나 입에 물려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부분도 많다.

보은군에서는 스포츠파크, 산업단지 등 큼지막한 사업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성과도 좋다고 한다. 군민으로서 군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덩치가 큰 사업도 중요하지만 소소한 보은군의 문제들에도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눈에 보이는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마음 깊이 느끼는 감동을 주는 행정이 군민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요즘 한참 보은읍 내에서 보행로 보수작업을 하는 것 같다. 보행로는 보행자를 위해 보수를 하는 것일 텐데 보도 공사로 인해 정작 보행자는 자동차와 함께 차도로 다녀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보행자를 위한 공사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보행자를 위한 어떤 안전장치는 없다. 안전장치를 설치하거나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보은군이기를 바란다.

보이는 것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 전부는 아니듯 군민들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는 것들도 신경을 쓰는 그런 보은군이기를 바란다. 시골에 산다는 것, 그것도 보은군에 산다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움으로 다가와 입에서 입으로 보은군이 홍보가 된다면 이것보다 더 좋은 홍보는 없다고 본다.

노 정 옥

마로 소여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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