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쁠 때 웬 설사
이 바쁠 때 웬 설사
  • 편집부
  • 승인 2017.06.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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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옥

천천히 걸으며 상점의 간판이나 식당 유리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읽는 적이 많았다. 딱히 무엇을 찾거나, 식사를 위해 메뉴를 고르는 것이 아니었다. 눈이 가고 입이 오물오물 글자를 읽고 있는 것이었다. 낡은 간판은 낡은 대로 정취가 느껴지고,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상점의 간판은 현대식으로 깔끔했다. 다양한 간판들이 섞여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것 같았다.

간판들은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 눈이 나빠져 잘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간판의 특징과 상점의 위치를 보고 찾아올 것이고, 어떤 관광객은 그 간판을 카메라에 담아 갈 것이고, 누군가는 낡은 간판 좀 바꾸지 하며 혀를 찰 수 도 있다. 보는 사람의 다양한 느낌이 그 상점의 장점일 수 있다.    

간혹 서울에 일이 있어 가면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한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스크린 도어에 적힌 짧은 시를 읽는 게 쏠쏠한 재미와 즐거움, 감동, 여유를 준다. 약속 시각이 다되어가는 초조한 마음을 짧은 시를 읽다 보면 잠시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고 기다리는 지하철도 금세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도시, 지하라는 꽉 막힌 공간에서 짧은 시 한 편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넓고 편하게 해주는 것은 바쁜 도시인들에게 작은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시들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들의 시로만 되어 있었다면 여운과 감동이 덜 와 닿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의 세련되진 않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와 소박하고 순수한 감성이 묻어나는 시도 함께 있어 더 와 닿는 여운을 준다.

이렇게 서울의 지하철 스크린 도어의 시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잠시라도 일상에서의 여유를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현재 너무 가물어 농부들은 가슴이 타들어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다. 이때다 싶은 마음으로 단 하루라도 비가 오나 안 오는 걱정을 하지 말고 부부끼리, 아니면 친구와 선후배와 어울려 면 소재지나 읍내에 나가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주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호사를 부려보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일까?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읍내를 천천히 걸으며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덥지만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시원한 음료수 한 손에 들고 읍내를 걸으며 간판이며, 상점 유리창에 붙은 광고도 있으며 걷다 보면 읍내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 배고프면 밥 먹다가 졸리면 자다가 텔레비전을 보고 싶으면 텔레비전 보다가 뒹굴뒹굴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쉽지 않은 일인지 안다. 농사일을 하루라도 거두기는 힘들 것이고, 더운데 거리를 걷는 것도 그럴 것이다.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꼭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래 김용택 시인의 '이 바쁠 때 웬 설사'라는 시를 읽으며 한번 씨익 웃는 시간은을가져보자.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작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나지요

허리띠는 안 풀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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