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어르신, 10년 넘게 이웃이 돌봐
치매어르신, 10년 넘게 이웃이 돌봐
  • 김선봉 기자
  • 승인 2017.01.26 10:34
  • 호수 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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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면 갈전리 김순심씨의 따뜻한 이야기

"일어 나셨어요? 경로당으로 밥먹으로 갈까요?"
마로면 갈전리 김순심(80세)씨는 매일 아침 이웃집에 들르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치매병을 앓으며 홀로 살고 계시는 85세 어르신의 인기척을 확인해야 안심이다.
안전여부를 확인하고 끼니를 챙기는 일, 치매약을 드시게 하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몫으로 10년을 넘게 하루같이 살뜰히 보살펴 왔다.

▲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어르신과 이웃집 친구 순심씨.

"다른 사람은 도통 따르지 않으니..."
어쩌다 그녀가 집을 비우는 날이 있을 때, 마을 다른 주민이 치매어르신을 모실라치면 손사래를 친다.
"그니만 따라. 우리는 아무리 꼬셔도 안돼" 마을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한다.

치매어르신은 36살에 홀로돼 6남매를 키웠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어. 억척같이 했으니까 자식 굶기지 않고 다 키웠지"라며 어르신이 남들을 믿지 못하는 성격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말한다.

순심씨도 처음에는 어르신으로부터 모진 소리 많이 들었다. 집에 잘 계시는지 확인하러 드나들 때면 집안물건을 훔쳐갔다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냥 참아야지. 편찮으신 분 얘긴데... 서운해도 돌보지 않으면 안되니까"

어르신은 요양병원에도 자식들에도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정방문 요양보호사의 돌봄도 받지 못한다. 순심씨가 아니면 그 누구도 어르신을 돌보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어르신에게 그녀가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돼버렸다.

"가장 맘 편하게 생각하는 서울 딸이 있지. 하룻밤을 못자고 그냥 와"
딸이 서울로 모셔서 호강도 시켜드리고 싶었지만, 밤새 불안해하며 억지를 부려 새벽에 택시를 타고 순심씨가 있는 집으로 내려와야만 했다.

어르신 자녀들이 시골집에 올 때면 자기선물보다는 순심씨 선물을 샀는지 확인한다. 치매와중에도 그녀를 챙기는 것은 결코 잊지 않는다.

"다행히도 치매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할머니는 주로 잠만 자. 다른데 돌아다니거나 하지 않으니까 내가 돌볼 수 있는거지"

어떤 날은 아침에 밥먹으로 가자며 깨워 대문앞까지 왔다가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어르신이 없어 찾아보면 다시 방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면 다시 깨워서 식사를 챙기기를 반복한다.

"사진? 안찍어. 나 이런건줄 모르고 얘기했네"
신문에 그녀 기사가 나가길 원하지 않는다.

"예전에 시할머님 모실 때 효부상을 탄 적이 있었지"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은 조실부모하고 할머니 무릎에서 자랐다. 그런 시할머니를 극진히 모셨기 때문에 효부상을 수상했다.

"한두해도 아니고 치매 시할머님을 모시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힘들 때도 있지만, 내색을 하기도 힘들고..."
지칠 때면 누구한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효부상까지 탄 사람이 힘들어한다 수군거릴까 말도 못하고 살았다. 또 효부상을 탈 만큼 잘 모시고 있는지 늘 부끄럽고 반문해야 했다. 힘겨워 지쳐나가는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마음이 지쳐갔다는 것이다.

"신문도 마찬가지야. 내가 큰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녀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이라며 극구 사진찍기를 거부했다. 마을회관에 모인 동네주민들이 "이쁘게 찍어", "누가 요즘 세상에 그런 소리 한다고"하며 거든다.

"저이는 동네사람 전화번호도 다 외워"
"?..."
경로당 점심식사 준비는 그녀가 한다는 것이다.

"밥해놓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밥먹으러 오라고 하다보니까 전화번호를 다 외운거지"
순심씨의 이웃을 위한 따뜻한 마음은 치매어르신을 돌보는 것 외에도 경로당 온갖 잡일들을 도맡다시피 한다.
순심씨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자 치매어르신이 살짝 그녀의 손을 잡는다.
"사진 한 장 찍어줘. 잘한 건 잘한거지"
동네 주민들의 성화에 못이겨 순심씨와 어르신이 10년지기 친구처럼 다정한 미소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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