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처럼 싱그러운 초심
초여름처럼 싱그러운 초심
  • 편집부
  • 승인 2016.05.19 10:30
  • 호수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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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천 제방을 따라 연분홍 벚꽃이 물결처럼 흐르더니 어느새 그 연분홍빛이 짙은 녹색으로 변했습니다. 제방 밑 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봄인가 했더니 벌써 초여름, 계절은 언제나 말없이 정확하게 제 역할을 수행합니다. 세상사에 얽혀있는 우리들이 이해(利害)의 덫에 걸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넘어지는 사이에 계절은 자연을 상대로 제 무늬를 새겨 넣으며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내밀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혹자는 세월의 무상함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우주의 섭리로 읽어내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떤 의미로 읽고 있습니까. 

처음 초(初)字가 접두사로 쓰이면, 특히 계절 앞에 쓰인 초봄, 초여름, 초가을, 초겨울 같은 단어들은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왜냐하면 계절의 변화와 함께 나의 앞날에도 바람직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갖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변화가 없는 항상심(恒常心)을 강조하지만 삶이 막혀있는 사람들에겐 변화가 없는 세상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될 것입니다. 특히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젊은이들에겐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실업은 해당 청년과 그가 속해 있는 가정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그 해결책도 범국가적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 우리나라의 기형아 출산이 16년 사이에 50% 상승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환경오염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또 암보험 가입자 사망률을 조사해보니 1차 산업 종사자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농업은 1차 산업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농민은 가장 대표적인 1차 산업 종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제 주변의 인물들 중에서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청정지역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이곳에 왜 이렇게 무거운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 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꼭 규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암 발병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꼽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청정한 자연 환경도 지속적인 스트레스 앞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 농업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월급생활자들은 일이 힘들고 작업환경이 열악해도 매 달 안정적인 월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작물의 생산과 판매 모두를 자신이 책임지다보니 심신이 그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농촌에는 고급 의료기관도 없습니다.  1차 산업 종사자들이 암 사망률이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는 현재의 농업과 농촌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아주 객관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는 가슴 아픈 사실입니다.

토마스 페인(1737~1809)은 영국 동부 소도시 셋퍼드의 가난한 퀘이커 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난 정치사상가입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1776년 초〈상식〉이라는 출판물을 통해 “사회에 보다 가치 있는 존재는 일찍이 세계를 지배해왔던 국왕이라는 깡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정직한 인간이다."라고 민중을 계몽했습니다. 그는 또한 불평등과 빈곤은 자연적인 소산이 아니라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개인 재산은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따라서 정의와 감사와 문명의 원칙에 의거해 볼 때, 그가 축적한 재산의 일부는 그 모든 것이 거기서 유래하는 사회로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다."라는 주장을 폄으로써 선각자로서의 면모를 후세의 역사에 뚜렷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초여름의 신록이 싱그럽게 번져 갑니다. 처음 初 字가 붙는 낱말들 중에서 초심(初心)이 라는 단어는 신록보다 더 마음을 싱그럽게 해줍니다. 이제 곧 개원하는 20대 국회에 정의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추혜선(45세) 초선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언론 정상화를 위해 성실한 입법노동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자신의 임무와 정체성을 밝혔습니다. 45세의 나이가 국회의원의 평균 나이로 보면 '신록'에 해당해서 그런 싱그러운 발상을 했는지는 몰라도 제헌국회부터 지금까지 국회의원을 입법노동자로 표현한 의원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쪼록 초선의원을 포함한 모든'입법노동자'들이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고 유권자들도 모두 초심을 추스르는 그런 싱그러운 나라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최 규 인

보은장신 / 보은향토문화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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