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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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부
  • 승인 2016.05.12 11:24
  • 호수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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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은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다. 더구나 따뜻한 봄날의 오후에 그것도 딱딱한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의 인내력을 시험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극복하고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 비책을 만들어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려고 노력을 해보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을 누가 쉽게 들어 올릴 수 있으랴!

중간고사를 마치고 수업을 시작하니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아마 관례에 따라 시험 후 수업은 안하는 것으로 알고 온 학생들의 불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척 칠판에 '신조어로 보는 한국경제'라고 크게 쓰고는 강의를 시작하였다.

1997년 IMF사태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변화가 많았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것이 사회에 떠도는 '신조어'가 아닐까 한다. 그동안 유행했던 신조어를 찾아서 그 뜻과 배경을 공부하다 보니 경제와 관련이 많음을 알았다. 몇 달 동안 연구한 자료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할 시간을 찾던 중 중간고사가 끝난 후 한 시간 정도가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선생의 마음을 알 수 없는 학생들은 강의하기도 전에 벌써 입이 한자나 나와 삐쭉거린다.

"여러분, 올해 베트남과 호주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한류'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대중음악으로부터 시작된 '한류'가 지금은 드라마. 음식, 게임, 자동차, 스마트 폰, 심지어 우리의 언어까지도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으니 대단한 일 아닙니까? 더 흥미로운 것은 '한류'라는 신조어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만들어 사용하던 것이 이제는 우리나라 뿐 만아니라 전 세계가 이 용어를 쓰고 있으니 양국 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참 이율배반적인 일입니다."

강의 중간에 '신조어'와 관련되는 재미있는 영상까지 보여주니 시큰둥했던 학생들도 호기심이 동하는지 60여개의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한다.

가장 졸린 시간, 거기다 불만으로 가득 찬 학생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꾼 강의에 나도 놀라 점점 더 신이 났다.

금년 초 베트남에서 만난 대학생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놀라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 노래가 좋아 따라 부르다가 그 의미를 알고 싶어 드라마를 보면서 독학했다고 한다.

또 한 달 전에 호주에서 들어간 한국식당은 우리를 제외하면 한국 사람은 서너 명 정도였고 모두가 외국인들로 가득 찬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가무를 좋아하고, 부지런하며, 특히 속도전에 강한 민족입니다. 이런 한국의 민족성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개미와 베짱이의 기질이 모두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할 때 보면 한국 사람들은 개미처럼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추운 지역과 더운 지역을 불문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한국 사람들처럼 흥이 많은 사람들도 없습니다. 지금은 안전문제로 거의 볼 수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버스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은 모두 우리 민족입니다. 지금은 노래방을 만들어 놓고 남녀노소 흥을 발산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끼가 많은 민족입니까?"

얼마 전 몇몇 지인들과 함께 '한국인'에 대한 토론을 펼칠 때 나온 말이다. 그래서 이왕 신조어를 만든다면 우리민족을 '개짱이'이라고 했으면 좋겠다. 개미와 베짱이 기질을 가진 민족, 그래서 열심히 일할 줄도 알고 또 놀 줄도 아는 민족으로 전 세계인에게 회자되었으면 한다.

류 영 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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