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다는 것
버린다는 것
  • 편집부
  • 승인 2016.04.20 20:29
  • 호수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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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잡동사니가 많다. 그 이유는 내가 버리는 것을 싫어해서다. 지난주 말 아침에 아내와 아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한다. "아휴, 이것 다 세탁소로 갈 거니?" "아니에요. 이번에 내 놓은 것은 다 버릴 거예요." "이 옷은 네가 대학 입학할 때 아빠가 사준 양복인데, 버릴려고?" "예, 벌써 몇 년 동안 입은 적이 없어요. 옷장만 차지하고 있어 이번에 모두 버려야겠어요." "아깝지만 잘했다. 입지 않는 것은 모두 내 놓아라. 창고에 두었다가 교회 바자회 때 내 놓으면 된다."

거실에서 신문을 보다가 모자지간의 대화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신문을 접고 아들 방에 가보았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더니 낌새를 채고는 얼른 주방으로 간다. "아들아! 이것은 입을 만한데 왜 버리냐? 그리고 이양복은 내가 사지 말라고 했는데 네가 떼를 써서 산 것 아니냐? 떨어졌다든지, 아니면 작아서 못 입으면 할 수 없지만 다 입을 만한데 왜 버리냐? 너 돈 좀 번다고 벌써부터 흥청망청하는 거냐?" "아빠! 버리지 않고 자꾸 쌓아 놓으니까 우리 집이 고물상이 되는 거예요. 버릴 것은 버리고 살아야지 아빠처럼 하면 버릴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경제를 살리려면 소비도 해야지 아빠처럼 그렇게 하면 국내소비가 죽어서 우리나라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니까요."

아들놈과 한 참 신경전을 버리는데 아내가 언제 왔는지 아들 옷을 주섬주섬 보자기에 묶어서는 창고로 가지고 간다. "내참, 모자지간에 손발이 저리도 잘 맞으니, 사람이 좀 산다고 올챙이 적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혀를 차며 아들 방을 휑하니 나왔지만 영 기분이 안 좋다. 아내 몰래 보자기를 다시 살펴보려고 창고에 올라가니 보자기를 어디에 감추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이리저리 찾다가 "아이들 물품"이라고 쓴 노란 박스가 있어 열어보니 딸아이와 아들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과 공책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인형은 내가 문학제에서 입상한 상금으로 산 것인데… 그리고 이것은 딸아이 초등학교 때 일기장과 공책이고, 어허 유치원 때 처음으로 나에게 보넨 크리스마스카드가 여기에 있었네." 나는 혼자서 타임머신을 타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한 시간은 보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이제는 내 곁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아니 옛날 같으면 벌써 떠나서 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아들딸들이 있어야할 나이다. 세상이 변하여 결혼연령이 늦어지다 보니 지금도 품안에 있지만 사실 정신적으로는 벌써 나를 떠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여보! 여기서 뭐하세요. 아까부터 찾아도 없드니만. 그리고 그 장난감은 또 뭐예요?" 아내는 창고문 밖에서 얼굴을 삐죽이 내놓고는 정신사납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여보, 이때 생각나요? 지혜가 우리한테 보낸 첫 번째 크리스마스카드. 이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30여년이 다 되어가네." "그게 아마 5살 때였지요. 서울에서 유치원 다닐 때였으니까. 빨리 시집을 가야 하는데 짝꿍 찾기가 그리고 어려우니" 아내와 나는 어두워지는 창고에서 한동안 장난감을 펼쳐 놓고는 옛 추억에 잠긴다.

"여보 이 때는 아이들 때문에 정말 행복했어요. 난 지금도 시장에서 사먹던 통닭이 생각나요. 한 마리 튀겨오면 온 식구가 모여서 맛있게 먹었는데. 이제 그럴 때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요?" "그럼, 지나간 세월이 다시 오겠소. 그러나 이런 옛 물건으로 인해 추억을 다시 되돌릴 수는 있잖소. 그러니 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오." "아이고 머리야, 왜 추억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고물상 이야기가 나와요. 내가 이래서 당신하고 길게 이야기를 못한다니까." 초봄의 빨간 석양도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있는지 창고문 밖에 걸려서 오고가지도 못하고 있다.

류 영 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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