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보은을 알아
너희가 보은을 알아
  • 편집부
  • 승인 2016.03.24 15:08
  • 호수 3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 영 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삼승면 우진 / 전 농협군지부장)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가 고향이다. 군대에 가서도 그랬고, 회사에 입사해서도 그랬다.

며칠 전 글쟁이들이 모여 대화를 하다가 고향의 지역적 한계에 대하여 토론이 벌어졌다. 어느 분은 이·동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어느 분은 면까지가 고향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결론은 사회통념상 군까지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였다.

"교수님 고향은?" "보은입니다." "예? 보은이세요? 보은 사람 같지 않은데요." "그래요? 보은 사람은 보통사람들과 모양이 좀 다른가요?" "예, 저도 청주로 이사 왔을 때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요, 청주교도소에서 보은사람을 빼면 교도소가 텅텅 빈다고…" "아! 그이야기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지금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병을 하던 때죠. 지금도 보은 산외면에 가시면 '창씨개명반대 길'이 있습니다. 일본이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창씨개명을 하려고 했을 때 목숨을 내놓고 마을 사람 전원이 반대를 한 거죠.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마을 사람 모두가 청주교도소로 이송되었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도 남겠죠. 잘 알지도 못한 사람들이 마치 지금의 이야기인양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아이고, 그런 것도 모르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보은사람들은 모두 애국자이십니다."

지난 주일에는 6차산업 관련 연구하는 것이 있어 옥천으로 출장가게 되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약속한 사업장에 들어서니 대표이사께서 반갑게 맞이해 준다.

"세상일을 살펴보면 다 사람이 하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농민들을 설득하여 조직을 만들고 지자체를 방문하여 지원을 받는 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객지에서…" 하며 대표이사는 그 동안의 고난과 애로사항들을 담담하게 말한다.

2시간 정도 대화를 통하여 조사가 거의 끝나자 나는 물었다. "아까 여기가 객지라고 하셨는데 고향은 어디신지요?" "보은입니다. 여기서 가깝죠." "그러세요. 저도 보은입다만."하며 우리는 다시 굳게 악수를 하였다. "이렇게 훌륭한 분과 같은 고향이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더구나 고향도 아닌 타향에서 이런 일들을 하셨다는 그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타지 사람들은 보은 사람들을 "폐쇄적이고, 고집쟁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아마 보은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기 때문에 폐쇄적일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실 보은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백제와 신라의 요충지로 사람과 물자가 흐르는 곳이다. 산촌이면서도 보청천을 낀 넓은 뜰이 있어 군민들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쌀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농협 지역본부에서 양곡팀장을 담당하며 놀란 것은 보은군 쌀 수매량이 충북에서 2위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보은 사람들은 옛날부터 화해와 개방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그 예로 내속리면 백현마을과 산외면 백석마을 사람들이 하는 '흰돌물다리기'라는 민속놀이가 바로 그 증거다. 이웃 마을의 우물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들의 물줄기를 나누어 주는 나눔과 화해정신이야 말로 진정한 보은 사람들의 정신이라고 본다.

지금은 비록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최하위권에 있고, 남부3군중에도 가장 군세가 약할지 모르지만, 보은군만이 지닌 특성과 자랑을 새롭게 정립해 나간다면, 전국에서 가장 자연친화적 군으로, 모두가 살고 싶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보은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