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초보은(結草報恩)
결초보은(結草報恩)
  • 편집부
  • 승인 2016.03.03 13:02
  • 호수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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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영 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벌써 몇 년 전의 일이 되었다. 보은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모지방지에 '동학골 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글을 쓴 적이 있다. 처음 신문사에서 글을 써 달라는 제의를 받고 고민 한 것은 글의 내용보다는 주어진 난의 제목이었다. 왜냐하면 바쁜 사람들은 우선 글의 제목을 보고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난의 제목은 이름과 같이 필자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고를 한 끝에 정한 것이 바로 '동학골 이야기'이다.

  그 후 한참이 지난 후, 어느 독자가 전화를 해서는 "동학골"이 보은 어디에 있으며, 한자로는 어떻게 쓰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사실 동학골은 나의 상상의 지명이다.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보은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있는 '북실'을 내 나름대로 '동학골'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보통 보은을 대표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면 당연이 속리산이나 법주사가 되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보은을 대표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본다. 그런 뜻에서 보면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야 말로 보은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요,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가슴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는 정신이라고 본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동학운동혁명기념공원'을 올라가 본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공원의 규모나 중요성에 비해 인적이 거의 없다. 봄과 가을에는 종종 관광버스가 서 있기는 하지만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공원을 둘러보는 사람보다는 넓은 주차장 그늘아래서 음식을 먹으며 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역사의 성지를 아시는지 술을 먹고 가무를 즐기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를 못했다.

이왕 보은이야기가 나왔으니 사자성어 중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중국의 고서 좌전(左傳) '선공(宣公) 15년'에 나오는 말로 죽은 후에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은혜를 갚는다는 보은(報恩)이라는 한자는 우리고장 이름인 보은과 똑 같으니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의미가 깊다.

그래서 우리 보은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방법을 찾던 중 건배사에 "결초보은"을 쓰기로 하였다. 행사나 모임에서 건배 제의를 받으면 일어나 다음과 같은 건배사를 하면서 "결초보은"을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필자를 부를 때 '보은선생'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여러분! 저에게 건배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조상대대로 내려온 고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다 보니 자기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또 자기의 조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라도 저의 고향을 생각하고, 저의 조상을 생각하기 위하여 고향과 관련된 말로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건배사 내용은 죽어서까지 은혜를 갚는다는 "결초보은"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결초라고 크게 외치면 여러분 모두는 "보은"으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하고는 필자가 큰 소리로 "결초"하면 모인 사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보은"하고 소리치니 이만한 홍보도 없다.

즐겁고 행복했던 33년의 직장도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요사이도 학교 연구실에서 책을 보다 교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삭막한 북풍바람 속에서 보청천 둑의 벚꽃들이 강바람에 꽃비가 되어 날리고 있는 모습이 눈앞을 지나간다. 또 속리산의 맑은 바람이 어디서 불어 왔는지 필자의 가슴으로 파고들고 있으니 어찌 고향을 잊을 수가 있으랴! 보은은 살아서는 황작함환(黃雀銜環)하고 죽어서는 결초보은(結草報恩)해야 할 나의 영원한 고향이다.

류 영 철

충북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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